색채의 하모니 속에 빛나는 ‘신의 영광과 자비’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면 그가 엄청난 소식을 들려주러 왔다 생각하라: 당신은 용서받았노라고…”
메시아의 탄생을 예고하러 나타난 대천사 개브리엘과 그를 맞아 놀라움과 경외에 휩싸인 순박한 시골처녀 마리아의 첫 만남을 묘사한 수태고지의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미국시인 로버트 블라이의 시 한 구절이다.
수없이 많은 수태고지의 그림들 중에서도 초기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도미니크회 수도사였던 프라 안젤리코가 그린 이 벽화는 그 우아함과 정갈함으로 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에게는 귀도 디 피에로라는 본명이 있었지만, ‘천사같은 형제’프라 안젤리코라는 이름으로 미술사에 남아있다.
일부 미술사가들에 의해 신비주의적 은둔자라는 평가도 받았던 그는 본질적으로 고전적 인간애보다 기독교적 인간애를 찬미한 독특한 르네상스인이었다. 그는 마사치오와 브루넬레스키 등 당대 르네상스 미술의 자연사실주의 경향을 화폭에 적극 받아들여 자신의 화풍을 성숙시켜 나갔다. 하지만 평생 수도사로 경건과 순종의 삶을 살았던 그가 정신적으로 추구한 것은 인본주의적 예술의 완성이 아니라 온전히 헌신된 거룩한 영혼의 세계였다.
당시의 최고 권력가였던 코지모 디 메디치가 지어 헌납한 산 마르코 성당의 북쪽 복도벽에 그려진 이 벽화는 입체적인 움직임보다 미묘한 색채의 하모니로 만물 위에 빛나는 신의 영광과 자비를 표현한다. 대중이나 한 개인 지원자의 요구에 부합한 그림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수도사 형제들이 늘 바라보며 찬미하고자 했던 묵상적인 그림이며, 세속의 치장과 인간적 드라마를 거부하고 자신의 믿음 위에 간결하고 명징하게 그려나간 신앙의 고백이다.
지금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는 한창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1월29일까지 전시되는 그의 그림들은 미국과 유럽의 유명 컬렉션들로부터 어렵게 빌려온 것들이라고 하니 평생에 한번 보기 힘든 전시회이다. 성탄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오직 그의 그림들을 보기 위해 겨울 뉴욕으로 날아가는 꿈을 꾸어 본다.
<김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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