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16일은 이순신 순국 407주기가 되는 뜻 깊은 날이다.
이순신 열풍의 한 해를 마감하면서 이순신의 전사가 갖는 몇 가지 의미를 살펴 보는 것도 바람직한 일 일것이다.
첫째, 전란사로 볼 때 이순신의 죽음은 곧 참혹한 임진 7년 전쟁의 끝을 뜻한다.
이순신은 평소 각별히 믿고 사랑하던 부하 장수인 해남현감 유형(柳珩)에게 말하기를 “자고로 대장이 조금이라도 공을 이룰 마음을 갖는다면 대개는 몸을 보전하지 못하는 법이다. 나는 적이 물러가는 그 날에 죽는다면 아무런 유감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가장 바라는 죽음의 시나리오를 토로한 일이 있는데 희망대로 극적인 영웅의 최후를 맞은 셈이다.
둘째, 역사적으로 관련 동양 3국의 흥망과 국제 균형이 재편 되었다. 숙종대왕은 현충사 제문에 “절개에 죽는다는 말은 예부터 있지만은 제 몸 죽고 나라 살린 것 이분에게서 처음 보네” 라고 써서 이순신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임진왜란의 여파로 명나라는 망하여 국권을 만주족 청나라에 내어주었으며 전쟁의 주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화병으로 죽어 도쿠가와 막부 정권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 참혹한 전쟁의 폐허 위에서도 조선의 국권은 굳건히 300여 년이나 유지되었으니 身亡國活은 과연 정확한 이순신 평가가 된 셈이다.
셋째, 이순신의 죽음은 愛民, 民本, 公道主義의 완결을 의미한다. 이순신의 가장 큰 大義는 임금이 아니라 公인 백성이었으며 그러므로 이순신은 무고한 인명의 희생을 요구하는 선조임금의 출전 명령을 단호히 거부하고 대신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으며 밀려드는 피난민을 모두 거두어 살길을 마련해주고 우리 백성의 편안한 삶을 침탈한 왜놈은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는 片帆不返의 결의로 몸을 돌보지 않으시고 매진 하다가 아깝게도 전사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의 죽음에 대해 광해군 때 영의정을 지낸 퇴우정 박승종은 충민사기에 「아, 공으로 하여금 만일 그날에 죽지 않게 했더라면 일개 공신에 지날것이 없었는데 이제 마침내 그 충성을 현양하고 절개를 표창함이 천지에 찬란하니 비록 죽었어도 오히려 살았도다.」 라고 ‘죽을 때에 죽었다’고 거꾸로 찬양했으니 가히 탁론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순신의 죽음을 KBS드라마처럼 자살인 듯 구성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단순 강직한 이순신의 품성을 도외시한 작가적 허구로 정사의 기록은 어디까지나 ‘전사’임을 명심할 일이다.
이것이 이순신을 바로 보는데 작품이나 드라마를 피해 「난중일기」와 같은 실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www.yisunshinusa.com
<이순신 교육 사이트: www.yisunshinusa.com>
이내원
전미주 한인학교협 이사
이순신 숭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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