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취약점은 자신이 언론 재판을 받아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뉴스로 얻어맞는 사람들의 아픔을 모른다. 펜이 왜 칼보다 무서운지 실감을 못한다. 만약 기자들이 기사의 피해자가 되고 검사와 판사가 죄인이 되는 경험을 쌓을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는 보다 아름다운 에피소드가 넘쳐 날 것이다.
얼마전 서울에서 보도된 뉴스 중에 매우 감동적인 것이 있었다. 세브란스 암센터 원장이 자신의 암과 투병하면서 암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는 스토리였다. 의사 자신이 암 환자이니까 환자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을 것이다.
최근 한국을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아우성인 MBC-TV의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논란은 이마에 진땀이 나는 종류의 뉴스다. 생각해 보자. MBC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황 박사는 희대의 사기꾼이 된다. 문제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은 세계적으로 망신이고 이같은 분위기는 ‘메이드 인 코리아’가 붙은 모든 상품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각 분야에서 ‘코리안’들의 정직성이 알게 모르게 심판 받게 된다.
만약 MBC의 보도가 오보라면 이것 또한 보통 문제가 아니다. 사과로서 끝날 일이 아니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넘어 갈 수 있는 성격이 못된다. 피해를 보상할 방법이 막연한 사건이다. 어느 쪽으로 결판이 나든 둘 중 하나는 매장되게 되어 있다. 내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MBC가 그동안 뉴스에 접근한 태도를 보면 어딘가 초조하고 서두르는 감이 있었다. MBC의 취재원 접근 방법은 자유당시대 유행하던 3류 기자들의 공갈협박 수법을 연상케 했다. 강압적인 취재과정 때문에 사회적인 몰매를 맞아 결과적으로 MBC가 처절하게 패한 셈이다.
왜 이런 희극적 비극이 일어났을까.
황 박사 연구팀이나 MBC의 PD 모두 성공에 지나치게 집착해 여기서 일어나는 후유증을 예견하지 못한 것이다. MBC는 세기의 특종 의식에 들떠 물증보다 심증에 치우쳤으며 황 교수팀은 성공의 결과에만 눈이 쏠려 과정에서 실수가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황 교수팀이 사이언스지에 논문을 제출하기 전 자체 DNA 검사과정이 석연치 않은 점이다. 또한 발표된 줄기세포 사진도 중복되어 있다. 성공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일어나는 시각마비 현상으로 노루를 쫓는 자에게는 산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MBC 파동은 끝난 것이 아니다. 2라운드가 아직 남아있다. 난자 윤리문제에서 그쳤다면 몰라도 일단 연구 자체에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에 황 교수도 학자적인 자존심에 유야 무야 넘어갈 수 없게 되었다. 오죽하면 황 교수가 “요즘 같으면 죽고 싶다”라고 말했을까. PD 수첩과 황 교수팀이 너무 감정적으로 얽혀 있어 현재로는 어떤 결론도 날 것 같지가 않다. MBC는 이제 물러나고 과학기관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이번 사건을 둘러싼 찜찜한 의문들을 풀어주는 수밖에 없다. 그냥 덮고 넘어가면 새로운 루머를 생산할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세에도 좀 문제가 있다. 황 교수의 연구실을 방문하는 등 처음부터 지나치게 황 교수를 구름 위에 올려 놓았다. 그 후 난자제공 윤리문제가 불거지자 이번에는 진실을 보도하려는 MBC에 대해 광고를 철회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식의 발언을 해 마치 PD들이 진실을 파헤치는 사명을 지닌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데 일조한 셈이 되어 약 주고 병 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사
c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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