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이 정보기관 취재다. 인터뷰에 응하지도 않거니와 이들이 다루는 모든 사항이 국가비밀인 까닭이다. 취재에는 떨어진 뉴스를 줍는 취재가 있고 금고 속 깊이 감추어진 뉴스를 끄집어 내오는 취재가 있다. 정보기관에 관한 문제점을 보도하는 것은 금고를 몇 개씩 열어야 하는 취재에 속하며 고도의 경험과 테크닉을 요한다. 잘못하면 정보기관이 흘린 그릇된 소스에 말려들어 거꾸로 이용당할 수도 있다. 리크게이트가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CIA 공작원이 얽힌 데다 정부 고위관리가 신문을 이용해 이 공작원을 정치적으로 매장하려는 음모까지 겹쳐 얽히고 설킨 복잡한 스토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리크게이트의 핵심은 누가 누구를 죽이려 했느냐가 아니다. 아무도 말은 않고 있지만 혹시 부시 정부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WMD)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침공한 것이 아닌가 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런 쪽으로 밝혀지는 날엔 부시는 대통령직 유지가 힘든 것은 고사하고 형사적인 책임까지 추궁 당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부시가 사전에 그런 정보(이라크에 WMD가 없다는)를 갖고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오판을 했다는 것이 밝혀지기 시작하고 있다.
부시는 2003년 연두교서에서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만들고 있다고 못박았고 이어 파월 국무부 장관은 유엔에서 인공위성 사진과 차트까지 제시해 가며 이를 뒷받침했었다. 부시와 파월은 왜 이같은 실수를 범했을까. 그동안 이 ‘왜’가 베일에 가려져 부시가 어느 정도 실수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CIA와 국제적인 첩보조직이 겹겹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LA타임스 특별 취재팀은 1년여에 걸친 취재 끝에 마침내 그 경위를 밝혀 내는데 성공(11월20일자 보도)했다. 가장 어려운 정보기관 취재를 LA타임스가 해낸 것이다. 스토리를 요약하면 미국이 독일에 망명한 이라크인의 꾸며낸 엉터리 정보에 놀아나 부시가 연두교서에 발표하고 파월이 유엔에서 브리핑까지 한 것으로 되어 있다.
독일 정보기관은 이 이라크인의 정보가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몇 번이나 미국에 충고했는데도 부시가 서둘러 발표했고 이 때문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독일 정보 관계자들은 이라크인이 주장한 엉성한 정보를 부시가 연두교서에서 인용했을 때 너무나 놀랐다고 한다. 결국 망명비자를 얻어보려는 한 엉터리 이라크 과학자의 정보에 놀아나 이라크 전쟁이 벌어진 셈이다. 뒤집어 표현하면 미국은 침공계획을 미리 세워 놓고 거기에 맞춰 아무 정보나 받아들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LA타임스 스토리를 읽고 나면 “부시 미국 대통령 맞아?”하는 의문이 떠오르게 된다. 너무나 유치하고 어이없기 때문이다. 실수라기보다는 대통령 권한 남용 및 중과실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상황을 몰고 간다면 미국이 북한과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부시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부시가 국민을 오도하고 있다는 기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을 그렇게 우습게 만든 것은 체니 부통령이라는데 포커스가 겨누어져 있다. “부시 하야하라”는 구호가 나오기 일보직전이다.
이 사
c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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