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의 하나다. 박완서가 쓴 소설이라면 나오자마자 달려가 산 후 밤을 새워 읽는 열성 팬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박완서는 또 보통 사람은 상상키 힘든 고통을 겪은 작가이기도 하다. 1988년 남편이 폐암으로 사망하자 저 세상으로 간 남편에 대한 애착과 회한을 달래기 위해 남편의 마지막 1년을 간병기 형식으로 그린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을 썼다. 여덟 개의 모자는 남편이 항암 치료를 받다 머리가 빠지는 바람에 사 모은 것이다.
그러나 남편을 잃은 지 불과 3개월 후 더 큰 고통이 찾아왔다. 스물 다섯의 외아들 원태가 죽은 것이다. 마취과 의사 지망생이던 원태는 레지던트 과정에 있었다. 딸만 넷을 줄줄이 낳다 얻은 무엇보다 귀한 아들이었다.
박완서는 스스로 미치지 않는 게 저주스러웠다. “아들이 이 세상에 살아 있지 않다는 걸 인정하게 되면, 그 다음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미친 듯이 몸을 솟구치면서 울부짖을 차례였다. …목청껏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통곡하면 소리와 함께 고통이 반사되면서 곧 환장을 하거나 무당 같은 게 되어서 죽은 영혼과 교감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내 기억력 말고는 아들이 존재했었다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이 세상이 도무지 낯설고 싫다. 그런 세상과는 생전 화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적었다. 한동안 “자식을 앞세우고도 살겠다고 꾸역꾸역 음식을 처넣는 에미(자신)를 생각해 내니 자신이 너무 징그러웠다”고도 했다.
공교롭게도 박완서의 어머니도 애지중지 하던 아들을 6.25 전쟁통에 잃어버리고 평생 폐인으로 살았다. 부모가 자식을 묻는다는 것은 인간이 맛 볼 수 있는 고통 중 가장 큰 것일 것이다. 이런 비극을 경험한 사람은 박완서 가족만이 아니다. 한국의 재벌 가운데 이상스럽게도 이런 일이 많다.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의 장남이 교통사고로, 4남이 자살로,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떴고 김우중 대우 그룹 회장의 장남도 보스턴 유학 중 교통 사고로 죽었다.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외아들은 고등학생 때 불의의 사고로 일찍 유명을 달리했고 올 들어 지난 6월 신준호 롯데 햄우유 부회장의 장남이 방콕의 한 콘도에서 추락해 숨졌다.
이 불행한 리스트에 삼성 이건희 일가도 오르게 됐다.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 윤형씨가 19일 뉴욕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것이다. 장례식은 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불교식으로 치러졌으며 화장한 유해는 한국으로 옮겨진다고 한다. 이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유학 중이던 윤형씨는 발랄한 성격으로 자신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는 등 일반 대중과도 친근해 더욱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한국에서 제일 돈이 많은 이건희 일가지만 자식을 잃은 슬픔은 무엇으로도 위로 받지 못할 것이다. 낯선 타향에서 불귀의 객이 된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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