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부산 APEC 정상회담에서 한.미 정상이 회담을 마치고 기자회견을 위해 나란히 포즈를 취했다.
노무현 한국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한미동맹과 한반도 평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채택하는 한편 미국측의 한국인 비자면제 프로그램을 강화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경주발 뉴스가 전했다. (본보 17일자 참조)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정상회담 사진을 보면서 문득 두 대통령이 상당히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그것도 여러모로.
원래 부시대통령과 노대통령은 이념적으로는 ‘물과 기름’이다. 아니 완전히 정반대의 대척점에 서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노대통령은 유럽식 좌파주의에 가깝고 부시대통령은 미국 유사 이래 가장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 사람의 성장배경 또한 너무 판이하다. 한 사람은 ‘찢어지게 가난함’을 딛고 고학으로 사법고시까지 합격했지만 다른 한 사람은 텍사스 석유재벌 가문에서 태어나 남들이 다 끌려가는 군대도 안가고 ‘황태자’처럼 성장했다.
한반도 문제 등 현안에 대한 해법도 둘은 매우 다르다. 노대통령의 참여정부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정책적 우선순위로 올리는 반면 부시행정부는 여차 하면 북한을 한번 때려줄 수도 있다는 호전적 발상을 배제하고 있지 않는 듯 하다.
하지만 이렇게 대비되는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두 정상은 ‘닮은꼴’이 되어가고 있다. 적어도 통치 스타일에 있어서는 확실히 그렇다.
물론 그동안 두 사람의 닮은 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 우선 ‘출신성분’과 관계없이 둘 모두다 서민적인 풍모를 풍긴다. 부시는 최고 명문 하버드대 출신이지만 연설할 때 가끔씩 문법이 틀린다고 한다. 하지만 대다수 미국민들은 그의 실수를 ‘애교’로 봐주고 있다. ‘이웃집 아저씨’ 같다는 느낌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노대통령도 마찬가지. 한동안 ...했습니다, 했고요~라는 특유의 발언스타일을 유행시킨 그는 3년전 대통령 후보 시절 서울 인사동의 한식 요리집에서 투박한 무좀 양말을 ‘부득불’ 노출시켜 대선캠프 참모들에게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고 한다.
그렇다면 ‘닮은꼴’의 어떤 부분이 문제인가? 아마도 ‘고집스러움’을 첫손 꼽아야 할 것이다. 특히 인사정책 분야에 있어서 그렇다.
지도자의 고집은 때로 카리스마와 잘 조화를 이룰 경우 리더쉽 상승작용을 불러오기도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격랑의 세월을 이겨낸 지도자들로부터 이같은 고집스러움을 찾아내는 일이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지도자의 고집은 때로 ‘귀막음’으로 이어진다. 특히 반대편의 목소리에 더욱 인색하게 만든다. 이른바 ‘코드’에만 집착한 나머지 포용과 통합의 큰 틀 담아내지 못한다. 이는 건강을 해치는 편식과도 같다.
부시는 ‘텍사스 마피아’ 사람들만 중용하려다 자충수를 뒀다. 헤리엇 마이어스의 대법관 지명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 일찌감치 중용한 루이스 리비 전부통령 비서실장과 칼 로브 백악관 비서실 차장은 결국 엄청난 부메랑이 되어 그를 압박하고 있다.
노대통령의 경우, ‘코드 인사론’이 아예 정권 출범초부터 공론화되다시피 했다. 그 결과를 보자. 오늘날 청와대 비서진들은 사사건건 자충우돌식 행태를 보이고 있다.
얼마전 참여정부의 홍보수석이 워싱턴에 왔다간 적이 있다. 한국의 모 연구기관과 미국의 모 대학의 공동 주관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방문 취지나 결과 모두 좋았지만 한국일보 현지 특파원과 ‘불필요해 보이는’ 설전을 벌였다. 홍보수석은 대내외적으로 국정을 홍보하라는 자리이지 기자와 싸우라고 만들어 놓은 벼슬이 아니다.
현재 양국 대통령 모두 인기가 바닥이다. 기껏해봐야 30%선대의 지지도밖에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은 본인보다는 참모들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인사가 만사’라 했다.
‘코드론’은 ‘정실 인사’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인의 장막’으로 귀결된다. 인의 장막에 쌓인 결과는 무엇인가? 한가롭게 ‘인터넷 키드’ 같은 댓글놀이나 하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이다. 또한 ‘오벌 오피스’ 출입금지령이 핵심 참모들에까지 내려지는 극단적 상황이다.
정반대의 두 지도자가 지금은 ‘거울’이자 ‘반면교사’처럼 똑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참 아이러니하다.
<본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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