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축구에서 프랑스팀의 경기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씩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프랑스팀은 선수들이 왜 저렇게 총천연색이지?” 흑인이 여러 명인가 하면 갈색 피부의 남미계가 있고, 아랍계와 터키계, 아시아계도 있다. 마치 인종 전시장 같다. 백인이 다수인 영국, 독일, 스위스팀과는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프랑스 축구의 수퍼스타인 ‘지단’만 해도 알제리 아랍계 출신이다. 그는 98년 브라질팀과의 월드컵 결승전에서 혼자 2골을 넣어 프랑스팀에 우승을 안겨준 국민적 영웅이다. 가수이며 국민배우로 알려진 이브 몽땅도 이탈리아계 프랑스인이다. 비프랑스인으로 프랑스의 상징이 된 대표적인 케이스들이다.
만약 한국팀이 백인, 흑인, 아랍인, 남미계 등으로 컬러풀하게 꾸며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뭐 이런 잡종팀이 있느냐고 아우성이 날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팀이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는 것은 프랑스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이들에게 민족은 별로 의미가 없다. 공화정의 원조인 프랑스로서는 공화국 시민이냐 아니냐가 중요할 뿐이다.
공화제의 정신적 뿌리는 자유, 평등, 박애에 의한 정의 실현이다. 민족이나 질서보다 정의가 더 중요하다. 사회주의자인 미테랑 전 대통령이 연설문에서 “정의는 질서를 앞선다”는 문구를 자주 쓴 이유도 바로 그것이 프랑스의 건국정신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지하철이나 청소부 파업이 몇 달 계속돼도 내버려두는 것은 질서가 좀 무너지더라도 정의를 관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국민들의 사고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지금 파리 근교에서 번지고 있는 소요사태는 프랑스가 인종문제에 있어서는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민자들-특히 무슬림에게는 자유만 주었지 평등과 박애는 외면해 왔다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 아랍계와 흑인들을 교외지역에 몰아넣은 뒤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지 나몰라라하고 40여년간 내팽개쳐 둔 것이 드디어 폭발한 것이 이번 소요사태다.
미국은 슬럼가가 시내에 있지만 프랑스는 교외에 있기 때문에 관광객이 일부러 가보기 전에는 빈민층 구조를 파악하기 힘들게 되어 있다. 문제아를 지하에 감추어 놓고 손님들에게는 평화스런 가정처럼 보이게 한 것이나 다름없다. 아름다운 파리의 이웃에는 분노에 찬 커뮤니티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을 외부에서는 알 수가 없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무슬림 2세들은 자신들이 프랑스인 인데도 프랑스 사람으로 취급해 주지 않는 사회구조에 대해 지금 폭력으로 의사 표시를 하고 있다. 대학을 나와도 아랍 이름을 가지면 취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보이지 않는 벽이 사회에 존재한 것이다.
프랑스인도 할 말이 있다. 자신들의 체제에 동화하지 않는 이들 무슬림 이민자가 600만명으로 늘어난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관용보다 경계하는 마음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이 분위기 속에서 우익세력이 커지고 이들은 질서가 서야 정의실현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파리 외곽이 아직은 슬럼가의 난동으로 그치고 있지만 만약 경찰이 강압적인 방법을 써 희생자가 나오는 날에는 유럽 전체에 무슬림들의 저항운동으로 번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웃 나라들이 프랑스 사태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민자에게 자유만 주고 평등을 주지 못하는 프랑스의 고민은 무슬림 이민을 받아들인 모든 나라들이 안고 있는 숙제다.
이 사
c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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