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할머니는 오늘도 날이 새길 기다려 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단숨에 달려오셨다. 간밤에 손녀가 또 집에 안 들어왔는데 혹시 학교에는 왔는지 알기 위해서다. 할머니는 간밤에 한숨도 못 잤다며 손녀가 밥은 먹는지, 도대체 어디서 뭘 하는지 걱정된다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8남매 자식을 키우면서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다며 자신이 손녀를 잘못 키운거라며 연신 눈물을 훔치신다.
2세 때부터 기저귀를 갈아가며 키운, 자식보다 더 애틋한 정이 간다는 손녀가 중학교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학교에 불려가기가 수도 없었다는 할머니는 나를 붙잡고 손녀를 찾을 방법이 없겠냐며 애원하신다.
이제 자식들이 모두 살만해져서 이 손녀만 아니면 할머니는 먹고사는 건 걱정이 없는데, 건강하게 조금만 더 살고싶은데 그것도 욕심인지 손녀 걱정에 잠이 안 온다는 할머니는 땡볕에서 고생하는 아들이 행여 마음 걱정이라도 할까 싶어 그것마저도 할머니는 안쓰럽기만 하다.
누구 말로는 손녀가 마약을 한다는 데 경찰은 그 현장을 잡지 않는 한 어쩔 방도가 없다고 하니 할머니는 손녀가 집을 나가 안 들어와도 혹 그사이라도 들어올까 싶어 신고도 못하고 무작정 기다리자니 속이 탄다고 하셨다. 이제 손녀는 경찰도 안 무서워하니 어디 보낼 데 없냐고 차라리 안보면 속이라도 편할 것 같다고 하시며 심심하면 한번씩 들어와 할머니 애간장을 녹이고 사라지는 철없는 손녀 때문에 하루해가 너무 길다고 하소연하셨다.
재혼한 아들이 혹시 손녀로 인해 며느리와 불화가 생길까 두려워 혼자서 속앓이를 하시는 할머니는 아들이 가여워서 아들대신 짐을 지고 싶은 어머니이다. 이제는 아들의 불행마저도 본인의 잘못인양 아들의 짐까지 애써 지시고 싶은 할머니는 오늘도 손녀를 찾아 먼 길을 오셨다.
C할머니는 손녀가 9학년에 입학하면서 나를 찾아오셨다. 손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두시간 버스로 통학하며 영재학교에 다녔는데 이젠 본인이 너무 힘들어해 고등학교는 집에서 가까운데로 가겠다고 해서 오긴 왔는데 걱정이 된다며 학교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셨다.
1.5세인 혼자된 아들이 할머니집에 들어와 살면서 딸은 할머니한테 맡겨두고 자꾸 밖으로만 도니 할머니는 손녀가 불쌍해서 그저 뭐라도 해주고 싶지만 늙은 할미가 뭐를 알겠냐며 손녀가 안쓰럽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중간 성적표가 나올 때마다 오셔서 확인하시고 학교에서 보내는 편지는 모두 챙겨 그 다음날이면 들고 오셔서 손녀 걱정에 보태어 손녀에게 무관심한 아들 걱정까지 하고 계신다.
다행히 손녀는 학교에 잘 적응하고 10학년이 되면서부터 공부 소리를 안 해도 알아서 책상에 앉는다며 손녀 걱정은 안하게 되어 안심인데 이제는 아들이 손녀에게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아들 때문에 또 걱정이라는 어머니이다.
두분 할머니는 모두 자녀를 떠나보내고 다시 둥지로 돌아온 자녀를 걱정하고 또 자녀가 달고온 자녀를 위해 예전에 못다한 사랑을 퍼붓고 있는 할머니이다. 이젠 걱정 없이 할머니 여생을 보내도 되는 데 손녀가 고등 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때까지 또 대학을 들어갈 때까지는 돌봐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우리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부모가 할 일은 자녀가 그들 본래의 모습을 맘껏 표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 것이다. 자녀들은 그들의 숨겨진 역량을 맘껏 펼치기 위해 고비 고비마다 그 넘치는 사랑의 힘으로 견디고 또 견디는 거다. 학교 생활이 힘들거나 과목 공부가 힘에 부칠 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유능한 과외 선생을 구함으로 자녀를 돕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억지스럽지 않은 절제된 사랑의 힘이 자녀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돕는 것이다. 할머니의 사랑이란 적어도 조건 없이 오직 자녀의 입장만을 생각해 주는, 어쩌면 자녀를 키우면서 터득한 지혜로운 자녀 사랑의 방법을 택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부모님들에게 섣부르게 자녀 교육을 할 바에는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차라리 자녀에게 무한한 사랑을 해주는 것이 더 교육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지경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