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한국의 한 어린아이가 일본으로 건너간다. 여섯 살짜리다. 이 꼬마의 이름은 조치훈. 일본 바둑계가 이 신동을 주목해 기다니 도장의 내제자로 받아들인 것이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500년 전통의 일본바둑이 지니고 있던 갖가지 기록을 이 신동이 하나 둘 깨기 시작한 것이다. 최연소 입단, 최연소 5단 등.
열일곱 살 때였던가. 이 조숙한 천재에게 최초의 타이틀 홀더가 될 기회가 왔다. 일본 기원선수권전 5번기 결승에 오른 것. 상대는 일본 바둑의 전설 사카다 9단.
두 판을 내리 이겼다. 나머지 세판 중 한판만 이기면 타이틀 홀더가 되는 것이다. 일본바둑 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 생길 판이다. 세 판을 그런데 조치훈은 모두 졌다. 대역전패다.
“죽으려고 했다.” 조치훈의 회상이다. 패배의 충격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사카다는 조치훈이 지기를 잘했다고 말했다. 조치훈의 형 조상연씨도 같은 말을 했다.
조치훈은 사카다나 형의 말을 당시에는 알아듣지 못했다. 나중에, 그러니까 훨씬 훗날 프로기사로서 관록도 쌓이고, 나이가 들어서야 이해를 했다고 술회했다.
이 패배 후 조치훈은 크게 자란다. 그 다음해 대망의 첫 타이틀을 딴다. 그리고 이어서 당시로서는 세계 타이틀과 다를 바 없는 일본 바둑계의 3대 기전 타이틀을 모두 따낸다.
그러나 얼마 못 가 3대 타이틀을 모두 잃고 만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도 사실은 전무한 기록이다. 수백명 프로기사 중 타이틀 근처에도 못 가는 기사가 거의 다이기 때문이다.
무관으로 전락한 후 조치훈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슬럼프의 터널로 빠져든다. 동시에 온갖 혹평이 따른다. 승부밖에 모른다. 쓸데없는 자학의 바둑이다 등등.
그러기를 근 10년. 조치훈은 마침내 부활한다. 3대 타이틀을 또 다시 동시에 거머쥔다. 이후 조치훈이 세운 기록은 눈이 부실 지경이다.
“100년 내에는 깨어지지 않을 기록을 세웠다.” 마이니치신문의 평이다. 그의 대기록은 불굴의 투지로 오랜 슬럼프를 극복해냈다는 점에서 더 가치가 있는 것이다.
미셀 위가 포천지 커버스토리로 소개됐다. 16세에 프로골프 선수가 된 천재소녀에 지극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인들의 갈채도 그치지 않는다.
갈채는 그러나 언제라도 비난으로 바뀔 수 있다. 슬럼프에서 헤맬 때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기대는 대성을 막을 수 있다. 막 프로에 입문했다. 그러므로 천재소년의 비상을 조금은 느긋이 기다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패배 때에도 너그럽게 보아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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