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에 중국 산동성을 공식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호텔에 여장을 풀기 무섭게 낮 12시쯤 부성장 주최로 만찬이 열렸는데 손님 이름을 불러가며 “위하여” 건배를 연거푸 세 번이나 했다. 술은 와인이 아니라 마오타이주 비슷한 산동 고량주였다. 놀라운 것은 “위하여”를 외치며 독한 술을 건배한 부성장이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영국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관리였다.
중국에서는 부부장, 부성장, 부시장 등 ‘부’자 붙은 직위를 가진 사람들이 허세가 아니라 실세다. 한국에서 차관, 부시장, 부사장 등 ‘차’자와 ‘부’자가 별 볼일 없는 직책으로 간주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엘리트 부성장이 건배를 한 후 국장급 간부들이 10분 간격으로 “건배!”하며 손님들에게 술을 권했다. 대낮에 1시간 동안 10잔을 마신 셈이다. 물론 부성장도 10잔을 마셨다. 만찬에 참석한 칭따오 한국 총영사에게 “중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급하게 술을 권하느냐”고 물었더니 “빨리 친해지기 위해서는 그 방법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특히 산동성에서는 술 못 먹으면 공무원이 출세에 지장 있을 정도”라고 했다.
요즘 한국에서 국회의원과 검사들이 폭탄주를 마시고 술집 여주인에게 폭언한 것이 말썽이 되어 정치생명이 왔다갔다할 정도인 모양이다. 더구나 이 국회의원이 폭소클럽(폭탄주 소탕클럽) 회원이었으니 화제가 될 만도 하다. 말은 바른 말이지 폭탄주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술버릇이 나쁜 것이고 국정감사 국회의원이 피감사기관 사람들과 2차로 술집에 간 자체가 실수였다고 본다.
유럽이나 중국에는 2차라는 것이 없다. 주로 한국과 일본에서 유행하는 과음 풍토다. 폭탄주가 군사문화의 부산물이라고 하지만 외국인들 눈에는 코리안의 신기한 관습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을 다녀온 사람들은 누구나 폭탄주 이야기를 먼저 떠올린다. 과음만 안 하면 폭탄주는 한국의 관광상품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북한 관리들마저 남북회의를 여러 번 하는 동안 폭탄주 마시는 법을 배워 평양에서도 번지고 있다고 한다. 얼마전 평양에서 한국 대표단과 저녁을 같이한 김정일 위원장도 폭탄주에 관심을 보이면서 “다음에 만날 때는 남한 사람들의 폭탄주를 한번 먹어 보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폭탄주는 굉장히 독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위스키와 맥주를 섞은 10도 정도의 술이 다. 다만 탄산개스 성분 때문에 취하는 속도가 좀 빠를 뿐이다. 그래서 상거래나 서먹서먹한 외국인 접대의 경우 분위기 조절용으로는 안성맞춤이다. 한국의 술 예절에 잔을 한번 돌리는 것을 ‘한순배’라고 하는데 ‘폭탄주 한순배’는 나쁘지 않은 민속이라고 생각한다.
폭탄주를 죄악시하여 사회에서 추방하자는 식의 논리는 1920년대 미국에서 실시한 금주령이나 마찬가지의 부조리다. 폭탄주 추방이 아니라 과음 추방운동을 벌여야 할 것이다. 폭탄주가 나오기 전에는 맥주 잔에 위스키를 가득 부어 마시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그건 정말 추방되어야 할 악습이었다.
로마 베드로 성당의 시스틴 채플 천장에는 미켈란젤로의 노아의 술 취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폭탄주를 마시지 않았는데도 취한 것이다. 이 명화는 옛날부터 술이 문제가 아니라 과음이 문제였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이 사
c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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