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인구 170명 - 주택 25채 소유, 대학생 5명
반세기전 한인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중가주 애국선열 추모위원회 김명수 회장이 보관중인 1955년 대한인 국민회의 중가주 지방 회의록을 통해 50년 전 한인사회의 모습을 살짝 들여다본다.
1955년 리들리와 다뉴바 등 중가주에 살던 한인은 모두 170명. 세대별로는 이민 1세 78명(남56·여22), 이민 2세 53명(남24·여29), 이민 3세 39명(남16·여23) 이었다. 교육열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했던 것 같다. 학생이 모두 27명인데, 이중 대학생은 5명이나 됐다.
생활수준도 높았다. 한인소유 주택은 모두 25채였고 총 44명이 땅을 소유했다.
한인 소유 농토는 모두 950에이커에 달했다. 김호·김형순 형제는 이중 절반에 가까운 400에이커를 소유, 당시 한인들의 부의 규모를 짐작케 하고 있다.
중가주는 예나 지금이나 곡창지대. 오늘날 한인들은 자영업과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50년 전에는 농업 관련 직업을 많이 갖고 있었다.
농장주가 7명으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고 노동주선(3명)과 팩킹(3명), 운송(2명) 등 농사 관련업 종사자도 많았다. 눈에 띄는 것은 당시 한인사회에 안과의사 2명, 외과의사 2명, 치과의사 1명 등 의사가 다섯 명이나 있었다는 것.
1944~1955년 대한인 국민회의 중가주 지방 회의록을 소유하고 있는 김명수 회장은 “당시 한인 사회의 생활상을 담고 있는 귀중한 자료인데 기증할 단체가 없어 개인적으로 간직하고 있다”며 “신뢰할 수 있는 한인 이민사 관련 단체나 박물관이 생기면 언제라도 기증하겠다”고 말했다.
<이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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