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여 미 전국 규모의 이슈가 돼 온 투표용지 공방이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다. 첨단 기기에만 의존하지 말고 종이로 기록을 남기는 것이 후환을 없애는 길이라는 의견에 무게가 실린 셈이 됐다. 컴퓨터로 처리되는 투표 기기로는 어딘지 모르게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는 ‘회의론자들’에게 승리가 돌아갔다.
터치 스크린 투표 후 프린터로 즉각 빼내 확인
“개표 논란 막자” 지난달 5개 주 합류 총 25개 주
14개 주와 DC도 검토 중… 11개 주는 요지부동
투표행렬 길 땐 프린터 고장, 시간 낭비 등 단점도
지난 달 5개 주의 의회가 컴퓨터 투표처리 기기에서 투표 기록을 반드시 종이로 뽑아내 검표요원이 일일이 체크할 수 있도록 명문화했다. 코네티컷, 하와이, 뉴저지, 뉴욕, 오리건 등이 ‘유비무환’의 자세로 이러한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전국적으로 종이 기록보전을 입법화한 주는 25개로 늘었다고 USA투데이가 최근 보도했다.
게다가 다른 14개 주와 디스트릭 오브 컬럼비아에서도 유사한 법안을 검토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종이 기록은 전자투표에 대한 증거로 남을 뿐 아니라 유사시 재검표가 필요한 경우 보다 확실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현재 이러한 법안에 전혀 관심을 표명하지 않는 주는 와이오밍, 노스다코다, 네브래스카, 오클라호마, 미시시피, 앨라배마, 펜실베니아, 로드아일랜드, 루이지애나, 켄터키, 델라웨어 등 11개 주다.
종이기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유권자가 투표를 한 뒤 자신의 투표가 정확히 기록됐는지 의아해 하는 수가 있는데 이 법안으로 이 문제가 속시원하게 해결될 수 있게 됐다고 반겼다. 이러한 유권자들의 우려는 2000년 대선에서 조지 부시 후보와 앨 고어 후보가 접전을 벌이면서, 플로리다에서의 개표 잡음과 관련해 부각됐었다.
이번 법안의 입법과정에서 강력한 로비를 벌였던 VerifiedVoting.org의 윌 도허티 디렉터는 “어느 특정 후보의 압승이 어려운 요즘의 선거에서는 박빙의 결과가 종종 의혹과 불신을 낳는다”며 “이러한 잡음을 미연에 방지하고 만일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원만하게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종이 기록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이유를 댄다.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투표, 개표 시스템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는 것이다. 투표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거나 프린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투표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당장 2006년 대선에서 이러한 문제점이 현실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예기치 않은 부작용으로 인해 종이 기록이 가져다 줄 장점보다 단점이 부각되고 이로 인해 투표시스템에 대한 유권자들의 신뢰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자칫하다간 종이 기록의 문제점이 빌미가 돼 투표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과 개선의 목소리가 커질 수도 있다고 매밀랜드 선거위원장은 지적했다.
실제 지난 7월 캘리포니아에서 터치 스크린 투표 기기에 프린터를 장착했는데 시험 결과 기기의 20%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프린터가 잼이 되거나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았다. 터치 스크린 기기의 선두 제작사인 다이볼드(Diebold)가 만든 기기인데도 이러한 문제가 야기됐던 것이다.
그 이후 캘리포니아는 이 기기 사용을 금지했다. 이 기기를 구입하려던 미시시피, 유타와 같은 다른 주들도 고민 중이다. 종이 기록 입법화를 검토 중인 매릴랜드는 과연 종이 기록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주 내 2개 대학에 연구를 의뢰했다. 네바다의 경우, 터치 스크린 투표를 하면 종이 기록이 프린터에서 빠져 나온다. 유권자들은 종이 기록을 체크해 자신의 투표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지난해 주 선거에서 이를 전면 실시했는데 별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만일 박빙의 선거 결과 재 검표 사태가 벌어졌다고 하자. 전자 투표결과와 종이 기록 가운데
어느 것을 잣대로 할 지에 대해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또 종이 기록을 토대로 검표에 들어가면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주정부들은 내년 1월 1일까지 무언가 용단을 내려야 한다. 오래된 투표 기기를 새 것으로 교체하는 데 연방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으려면 말이다.
전문가들은 무슨 기기나 장치든 처음 사용하다보면 문제점이 나오게 마련이라고 한다. 종이 기록을 의무화해 시행하더라도 예외가 아닐 것이란 전망이다. 아무튼 2006년 대선을 1년 여 앞둔 상황에서 보다 정확한 투표와 개표 방안을 둘러싼 공방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