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있는 홀로코스트 뮤지엄은 야드바셈이라고 부른다. 야드바셈을 돌아보노라면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나치가 유대인들을 총살하는 장면과 게슈타포가 유대인의 사체를 불태우는 현장 사진들을 이스라엘 정부가 어떻게 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유대인 문제 총책임자인 나치의 히믈러는 수용소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빠짐없이 사진을 찍어 자신에게 보고하라고 지시했었다. 그는 누구를 막론하고 수용소 내에서 자신의 허가 없이 사진 촬영하면 엄벌에 처했으며 심지어 나치 친위부대인 SS나 게슈타포도 이를 어길 때에는 감옥에 보낸다는 것을 명백히 했다. 히믈러는 새 나가는 것을 두려워해 현상작업과정에 게슈타포를 배치하여 사진과 원본을 직접 나르게 했다.
워싱턴 DC의 홀로코스트 홀에 가면 또 한번 놀라게 된다. 나치의 만행을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 베를린의 유대인 상점들을 박살내는 ‘크리스탈 나하트’의 공포, 수용소에서 식사당번이 운반하다 흘린 수프를 먹으려고 유대인들이 몰려들어 땅을 혓바닥으로 핥는 비참한 장면, 옆에서 이를 지켜보며 미소 짓고 있는 독일 경비병 등이 기록영화로 상영된다. 미국 대도시마다 홀로코스트 뮤지엄이 있지만 워싱턴에 있는 뮤지엄이 규모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세계 최대며 사진과 동영상은 아우슈비츠 박물관을 훨씬 능가한다. 카터 대통령의 특별 배려로 스미소니언박물관 근처에 지어진 이 홀로코스트 홀은 내셔널 뮤지엄으로 지정되어 있다.
나치가 아니면 찍을 수 없는 이 자료들을 어떻게 구할 수 있었을까.
독일 정부가 역사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이스라엘 정부와 유대인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독일의 반성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자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에 취재 갔을 때 가장 감명 받은 것 중의 하나가 독일 학생들이 아우슈비츠를 단체 견학하는 장면이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렇게 잔인했다”를 현장 확인하는 살아 있는 역사공부였다. 부끄럽지만 다시는 나치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독일 정부가 못난 조상을 후손들에게 보여주기로 국가정책을 세운 것이다. “게르만 민족이 다르긴 다르네”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바로 이 점이 같은 2차대전의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의 차이다.
오는 15일로 광복 60주년을 맞는다. 한국인에게는 광복절이지만 일본인들은 이 날을 국치일로 여긴다. 8.15를 전후해 일본에서는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보다 패전에 대한 분통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행사들이 전국적으로 열린다. 히로시마 공원에서 원폭 희생자 위령제를 열면서 반핵 반전데모도 겸한다. 원폭을 자초한 과오에 대한 반성은 없고 원폭 참상만을 강조한다. 자신들이 2차대전의 유일한 원폭 피해자라는 것이다.
30년을 한 세대로 계산한다면 60년은 두 세대가 지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독일에서는 두 세대를 넘기면서 역사반성 운동이 더 가속화 돼 지난 6월에는 베를린 중심부 브란덴부르크 문 근처에 대규모의 유대인 추모공원을 세우고 슈뢰더 총리가 유대인 수용소가 있던 부헨발트를 직접 방문, 독일의 부끄러운 과거사를 사죄했다. 그런데 일본은 두 세대가 지나도록 반성은커녕 역사 왜곡을 계속하는 등 패전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성할 줄 아는 이웃은 하나의 축복이요 반성할 줄 모르는 이웃은 스트레스다. 이런 면에서 일본은 과거나 현재나 한국에게는 스트레스적인 존재다.
이 사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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