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 거주하는 회사원 C모씨는 한국시각으로 8월1일 오전 5시 30분, 시카고와 서울(인천)간 첫 운항을 시작한 아시아나 항공 OZ235편에서 내려 공항 밖으로 나오자 북받쳐 오르는 심정에 가슴이 뭉클해 졌다.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떠난 후 8년여 만에 찾는 고국의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딱히 돈이 없거나 시간이 없어서 한국에 돌아오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가족이 없어서도 아니었고, 시카고에서의 생활이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재미만 있었기에 돌아올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국을 찾지 못한 것은 바로 미국에서 자리 잡고 살려는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신분 문제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미국에 붙어살려고 했던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한 후 공채 기업에 지원하기엔 이미 나이를 넘겨 버렸고, 그렇다고 한국에서도 뚜렷한 비젼을 찾지 못하자 미국에서 자리를 잡아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시카고에서 어렵게 직장을 구해 유학을 올 당시 가지고 있었던 F1비자를 미국내에서 직업 비자 H1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고국 방문과는 자꾸만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H1으로의 신분 변경을 미국에서 진행한 탓에 한국을 들어가면 일단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다시 비자를 받아야 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을 방문하려는 C씨의 마음을 잡는 것은 바로 C씨의 변호사 였다. “미국에서 신분을 변경한 후에는 주한 미국 대사관을 찾더라도 그쪽에서 비자 발급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모처럼 직장을 얻은 C씨가 단지 한국에 한번 가고 싶어서 자칫 미국에서의 생활을 모두 포기하는 모험을 펼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1년이 가고 2년이 흘렀다. 그동안 회사도 옮기며 다른 직장에서 H1신분은 유지할 수 있었지만 고국엔 갈 수 없었다. 그 동안 한국에 계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도 들었으나, ‘가면 다시 못 온다’는 변호사의 말이 걸려 도저히 비
행기 표를 끓을 수 없었다. 명절만 되면, 어버이 날이 되면, 여름 휴가 철이 되면, ‘한번쯤 한국에 가봐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점점 강해져만 갔다. 이까짓 미국 생활이 뭐라고, 아버지 임종을 지켜보는 것 까지 포기해가면서 시카고에서 살아야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중 C씨는 최근 마침내 영주권 신청이 어느 정도의 단계를 지나 해외여행 자격을 취득, 드디어 꿈에 그리던 고향땅을 밟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조금 후면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마음이 뜨거워져 왔다. 조금만 있으면 형제들, 한번도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조카들의 재롱을 확인 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C씨는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살고 싶어 한다. 물론 새로운 기회를 찾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때론 신분이란 굴레에 갖춰 보고 싶은 이들을 못보고 살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박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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