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V홀릭] SBS ‘패션 70s’
“아프냐, 나도 아프다.” SBS ‘패션 70s’ 연출자인 이재규 PD의 전작 ‘다모’는 이 대사로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대사 자체의 멋 뿐만 아니라, ‘다모’가 얼마나 함축성을 중시하는 작품인지 보여줬기 때문이다. 빠른 스토리를 선택하는 대신 대사 한마디에도 캐릭터의 복잡한 감정을 담았고, 영상만으로 감정의 흐름을 그려내기도 했다.
덕분에 ‘다모’는 정통사극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빠르고 어려웠지만, 젊은층 사이에서는 현대극보다 더 스타일리시한 ‘마니아 드라마’가 됐다.
반면 ‘패션 70s’은 느긋하고, 단순하다. ‘다모’가 14회로 끝난 것과 달리, ‘패션 70s’는 14회가 돼서야 네 주인공의 관계가 정리되기 시작했고, 이제야 더미(이요원)와 준희(김민정)가 디자이너 수업을 받는다. 대신 그 사이 그들이 어린 시절 어떤 관계였고 어떻게 자랐는지 촘촘히 보여주며 누구라도 쉽게 스토리를 이해하도록 만들었다.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동영(주진모)이나 봉실(이혜영)처럼 무겁고 카리스마적인 인물은 시종일관 진지한 반면, 연경(현영) 같은 코믹 캐릭터는 단 한 순간도 진지해지지 않는다.
친딸 준희를 위해 더미가 친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게 만들어, 딸에 대한 애정과 양심 사이에서 고민하는 양자(송옥숙) 정도가 복잡한 캐릭터다. 그리고 ‘다모’처럼 복잡한 애정관계보다는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애끓는 부모 자식간 정을 내세워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다모’가 함축적인 표현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몰입’의 순간을 주었다면,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패션 70s’은 보다 많은 이들이 편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친절함은 세련된 대사를 없애고, 보기 편안한 영상이 나열되도록 만들었다. ‘패션 70s’는 ‘패션’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세련되지 못하다. 작품이 지향하는 감성 자체가 ‘패션’보다는 ‘70년대’의 단순하고 투박함에 쏠려있기 때문이다. ‘다모’의 조선시대 옷들은 그리도 예뻤는데 왜 ‘패션 70s’의 옷들은 투박해 보이기만 할까.
물론 이재규 PD에게는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쉽고 편안한 ‘패션 70s’은 어려웠던 ‘다모’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중이다. 하지만 그 시청률과 함께 우리의 과거를 스타일리시한 ‘판타지’로 그려낼 수 있었던 PD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패션 70s’은 보기엔 무난하지만, 몰입하기엔 평범하다. ‘다모’의 그 엄청난 ‘폐인’들이 ‘패션 70s’에는 많이 보이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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