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27)가 망가졌다. LPGA 투어에 발을 들인 지 6년만에 22승을 몰아치며 명예의 전당 입회 조건을 채운 역사적인 선수가 서른 살도 안돼 커리어가 걱정되는 기로에 섰다.
천하의 박세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과연 재기는 가능할까. 물론 “부모의 간섭이 너무 심해서 그렇다” “골프밖에 몰라서 그렇다” “결혼을 하라”는 등 여러 가지 의견들이 많다. 하지만 원인 파악이 그리 간단한 것이라면 데이빗 듀발과 카리 웹도 진단을 부탁할 것이다.
우선 기자가 LPGA 투어 대회를 취재하면서 본 박세리는 골프밖에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이미 보이프렌드 스캔들도 있었고, 투어 대회에 가 보면 호텔 방에 손님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투어 관계자들과 잘 어울리고 인기가 좋았다. 연습 후 아이스하키 경기 구경을 가는 것도 봤고 박세리가 스노보드를 타는 사진도 신문에서 여러 번 실렸다. 일주일 전에 산 와인 한 박스의 값이 올라갔다고 좋아하는 모습도 기억난다. 미국생활에 그 어느 한국 선수보다 적응을 잘 하고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보였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하도 오래된 것이라 이제서야 곪아터졌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골프 전문가가 아닌 ‘아버지 코치’에 대해 한 유명한 코치에게 물어보니 “골프스윙이란 게 엄청나게 복잡한 사이언스가 아니라 잘 맞을 때의 스윙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박세리의 ‘굿스윙’을 가장 많이 본 아버지가 좋은 코치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일리 있는 말로 들 렸다.
닉 팔도, 칩 벡, 케이트 카크릴… 그러고 보면 한 여름 바깥에 내놓은 김치보다 빨리 시는게 골프선수다. 세계랭킹 1위였던 선수가 자신감을 잃어 레이다 스크린에서 사라지고 브리티시 오픈 우승자가 ‘Q스쿨’을 통과하지 못해 쩔쩔매고 대학무대를 휩쓸던 여자 골퍼가 한번 망가진 스윙을 고치지 못해 골프장에서 골프채 대신 마이크를 들고 다니는 세상이다.
점점 잘 치게만 된다면 현재 송나리·송아리 한국계 쌍둥이 자매골퍼를 능가하는 여자골퍼가 없을 것이다. 13세 골프신동으로 가는 곳마다 화제였던 때가 어제 같은데 어느새 19세로 내년이면 틴에이저가 아니다. 김칫국부터 마신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직까지는 우승이 없다. 특히 언니 나리는 올해 번 토탈 상금이 2,306달러에 불과하다.
따라서 미셸 위도 정작 돈방석에 앉을 지 그때 가봐야 안다. 나이가 들어 ‘골프신동’이란 레벨이 떨어지면 그때는 실력으로 말해야 하는데 지금 겸손해서 나중에 손해볼 일은 없을 것 같다.
이규태
차장대우·레저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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