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집 한채 값 정도를 예치하러 평소 거래하던 한인은행에 갔습니다. 예금계좌를 새로 여는데 직원이 느닷없이 백지 한 장을 내놓고 줄 두 개를 쓱쓱 긋더니 사인을 하라는 거예요. 이유를 물었더니 정전 때문에 컴퓨터 시스템이 안돼 그런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백지 사인을 하라니 상상할 수 있는 일입니까. 이렇게 직원 교육이 안된 은행이라면 큰일이다 싶어 당장 지점장에게 항의하고 기존에 거래하던 계좌도 모두 빼버렸지요.”
은행 관련 취재를 하며 한 한인 고객에게 들은 이야기다. 몇십만달러의 돈을 입금시키는데 어떻게 믿고 백지사인을 해주겠느냐며 이 고객은 은행의 직원교육 부재를 탓했다. 은행측은 정전 상황에서의 관행에 고객이 너무 과민 반응이었다고 항변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에피소드는 한인은행들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의 하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요즘 은행가 사람들을 만나면 은행 비즈니스 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신규 한인은행들의 증가로 은행간 경쟁이 더욱 극심해진데다 지점은 늘고 사람은 많이 필요한데 쓸만한 사람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하는 고객이 창구 직원 교육 부재를 탓해도 답할 말이 별로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현금거래나 혐의거래 보고 의무를 명시한 BSA 규정과 상장 기업 경영진 및 이사회 등 내부의 회계 책임을 더욱 엄격하게 강화한 SOX(사베인스-옥슬리)법도 한인은행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BSA 문제는 최근 몇 년새 은행 감사에서 감사관들이 가장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핫 버튼’이어서 감사 때마다 은행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또 상장 은행들의 경우 SOX 때문에 시스템 강화에 비상이 걸려 있고 회계 관련 비용부담도 연간 몇십만 달러씩 늘고 있다고 한다. 벤자민 홍 전 행장의 사퇴를 몰고 온 나라은행의 회계 오류 사태도 SOX법이 아니었다면 전혀 불거질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SOX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다보니 비상장 은행들에서는 차라리 상장을 안 하는 게 편하겠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과제를 안고 있는 은행 경영진들로서는 점점 어려워지는 환경 속에도 실적을 높이고 주가를 올려야 하는 압박감이 가중되는 상황이겠지만, 그러나 일선 창구에서 고객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아직도 높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앞서 말한 고객의 에피소드가 ‘고객이 없으면 은행도 없다’는 기본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한인은행들도 이제 서비스 질 향상 등 질적 도약과 함께 체계적 인력 양성 시스템을 포함한 장기적 성장 전략에 고심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한다.
김종하
경제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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