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무척이나 고지식했던 필자를 아버님은‘곰 같은 놈’이라고 칭찬(?)하셨다. 말씀하실 때 분위기로 봐서 미련한 놈이라는 비하가 아니라 꾸준히 조용하게 제 할 일을 한다고 칭찬하신 것으로 들렸던 기억이 난다.
아버님은 집으로 찾아오는 제자들에게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견뎌내서 사람이 됐고 우리의 선조가 됐다는 삼국유사의 단군신화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이 신화는 몇 천년 동안 온갖 외세의 침략과 어려움을 참고 이겨낸 끈기 있는 민족성을 나타내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곰은 둔하고 무엇이든 먹기 좋아하고 겨울 내내 동면하고 대체적으로 순하지만 가족이 공격당하면 목숨을 걸고 덤비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또, 한방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곰은 귀한 한약재중의 하나인 웅담(熊膽)을 연상시킬 수도 있다.
양의학을 공부한 필자로선 왜 웅담, 곧 곰의 쓸개가 몸에 좋은지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입장이지만 몸 안의 콜레스테롤과 지방 대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담즙이며, 그 담즙을 담아 놓는 것이 쓸개(膽, gallbladder)라는 점에서 분명 약효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선조들이 겁이 없는 사람을 대담(大膽)하다, 즉 쓸개가 크다고 하고 비겁하고 간사스러운 사람을 쓸개 빠진 놈이라고 부른 것을 보면 쓸개의 역할을 중요시했던 것 같다.
쓸개는 담즙을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주머니 같은 기관이다. 담즙은 간에서 분비되는데 음식의 지방성분 소화를 도와주고 간에서 분해한 노폐물들과 콜레스테롤을 몸밖으로 내 보내는 역할도 한다.
담즙은 담관을 통해 쓸개에 저장된다. 기름진 음식을 먹을 경우 내장에서 신호역할을 하는 내분비 호르몬이 나와 쓸개를 수축시키고 그에 따라 저장되었던 담즙을 십이지장으로 내보내져 소화를 돕는다.
그런데 문제는 담즙이 쓸개에 저장돼 있는 동안에 콜레스테롤이나 빌리루빈 같은 물질의 농도가 진해지면서 결정체(crystal)를 이루고, 그 결정체가 점점 커져서 돌처럼 단단한 담석(gallstone)이 되는 경우이다.
담석이 쓸개 안에 머물러 있으면 별 문제가 없지만 식사 후에 쓸개가 소화를 돕기 위해 수축하면서 그 안에 있던 담석을 담관을 통해 내보내게 될 때 문제가 생긴다. 담석이 쓸개관에 걸려 급성 담낭염을 일으키기거나 담관을 타고 내려오면서 상우측 복부에 심한 복통을 일으키기도 하고 담관염을 일으키기도 한다.
담석으로 인한 합병증 중에 제일 두려운 것은 췌장염이다. 담석이 담관을 통해 내려가면서 췌장에 문제를 일으켜서 생기는 병으로 심하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담석증으로 인해 식후 복통이 자주 일어나거나, 췌장염, 담낭염 등이 생겼다면 쓸개를 떼어내는 담낭 제거수술을 받아야 한다. 예전에는 복부를 크게 절개하고 수술했지만 요즘에는 복벽경(laparoscope)을 통해 수술하기 때문에 회복이 빠르고 부작용도 적다. 그러나 일단 담낭제거수술을 받고나면 지방성 음식을 많이 먹을 경우 소화불량이 생기므로 이를 삼가야 한다
담석이 있어도 아무 증세가 없으면 바로 수술할 필요는 없으며 증세가 생길 때까지 놔두는 것이 상례이다. 담석증은 대개 체중이 평균보다 더 무거운 중년 여성들에게 자주 생기므로 식이요법 등으로 몸무게를 줄이고 지방성 음식을 삼가며 평소 물을 많이 마시고 고콜레스테롤증과 고지방증을 제대로 치료해야 담석증이 일어날 확률을 줄일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선조들이 그랬듯이 곰처럼 살기는 살되 곰처럼 먹어서는 안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