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방문 마지막 날 일정은 묘향산 관광으로 시작됐다. 버스로 이동했는데 중간에 화장실이 없어 곤혹을 겪었다. 남자 회원들은 버스를 세운 뒤 길가에서 슬쩍 해결했지만, 여자 회원은 대책이 없어 안타까울 정도였다. 묘향산 초입 보현사 주변은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있었다. 점심을 도시락으로 해결한 뒤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각국 지도자 등으로부터 받은 수천 점의 진귀한 선물을 진열한 전시관을 구경했다.
“해외동포 사업가와 적극 협력” 협정문
짐을 모두 보관소에 맡기고, 신발에 커버를 씌운 후에야 100톤이 넘는 철대문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고 정주영 회장이 보낸 현대차 외에 김대중 전대통령 등 남한측 인사들의 선물도 다수였다.
서둘러 평양에 돌아왔다. OKTA에서 답례로 준비한 마지막 만찬은 인민문화 궁전에서 열렸다.
월드 OKTA 이영현 회장의 인사말과 정진철 명예회장의 건배 제의로 행사가 시작됐다. 기억에 남는 것은 림경만 무역상(장관)의 태도.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소개되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지만 림 무역상은 앉은 채로 인사를 받는 위엄을 보였다. 그를 통해 북조선이 외교에서 보여준 배짱과 오만을 엿볼 수 있었다.
림 무역상은 우리에게 술을 따를 때도 왼손 한 손으로 따랐다. 다른 회원들은 모두 두 손으로 받았는데, 내 차례에가 돼 나도 한 손으로 받으니 잠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이 일을 가지고 친북 성향의 회원 몇은 내가 결례를 범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림 무역상은 내가 마음에 걸렸는지 “바른손은 악수를 하기 위해 왼손만으로 술을 따랐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만찬 도중 한 회원이 술에 취해 북쪽 인사에게 시비를 거는 해프닝도 발생했지만 무사히 수습됐다. 평양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이번 무역상담회의 가장 큰 성과는 북조선 무역촉진위원회와 해외한인무역협회가 장문의 협정문을 채택한 것. 마지막날 발표된 이 협정문은 북조선이 해외동포 사업가에게는 어떠한 조건도 대폭 수용한다는 거의 파격적인 수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순안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며칠동안 우리를 안내해 준 젊은 의례원 동무들은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하면 눈시울을 적셨다. 그들의 순박한 모습을 보면서 북녘의 동포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사명감을 갖고 일해야겠다는 다짐해 봤다.
공항에서 도열해 있는 고급 간부들과 인사한 뒤 비행기에 오르니, 이별을 아쉬워하듯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다시 고려항공편으로 심양에 도착한 뒤 제주도에서 열리는 한상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대한항공에 몸을 실은 뒤 방북 일정을 돌아봤다.
며칠 간 돌아본 북조선은 격변하는 한반도 정세에 맞춰 분명히 개혁과 개방을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북조선이 변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운명이 리비아의 가다피처럼 될 것인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처럼 될 것인지 궁금했다. 곧 보게 될 한반도의 변화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지 등에 대한 상념에 젖으면서 짧은 여정을 마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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