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숭 목사 (콘트라코스타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
어느 글에선가 스트레스 밀도가 가장 높은 직업은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라는 보고를 접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그럼 목사인 나도 예외는 아니겠구나” 하는 씁쓸한 공감을 하고 지나쳤던 것 같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스트레스는 있다. 심하게 아파 병원에 가보면 제일 많이 들으면서도 맥 빠지는(?) 말 한 마디, “이 병은 스트레스에서 온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구책을 마련한다. 스트레스를 스스로 감소시키는 자구책이다. 쉬운 말로는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어떤 이는 운동으로, 어떤 이는 친구 만나 잡담으로, 어떤 이는 여행으로 푼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나름대로 몇 가지 푸는 방법이 있다. 그 중에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 독서다. 책을 읽으면 스트레스가 상당히 풀린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책을 읽다 보면 책의 활자들이 나의 나쁜 긴장은 무마시키고 필요한 긴장을 증가시켜줌을 느낀다. 장르는 구별하지 않는다. 깊은 신학서적부터 시작해서 약간은 통속적인 소설까지. 그렇다고 아무 책이나 다 읽는 건 아니다. 읽으려고 들었다가 표현력이나 내용이 아니다 싶으면 초장에 관둔다. 그러나 장르와 상관없이 글이 좋으면 끝까지 정독하는 편이다. 일단은 글 잘 쓰는 사람의 책이 좋고, 번역본이라면 번역부터 깔끔해야 한다. 논리가 정연하고 어느 정도 감성이 가미된 미문(美文)이면 더 좋다. 그래서 그런 책들에 몰입하다 보면 나의 스트레스는 어디론지 가버리고 만다(적어도 독서하는 그 시간에는).
‘리서치컴’이라는 마케팅조사 전문기관에서 낸 통계에 의하면, 우리 국민(한국)의 10명 중 4명은 지난 한 달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전혀 읽지 않았다”가 40%). 대신 TV는 전 국민의 과반수가 하루에 1시간 이상씩 시청한다고 한다. 독서를 하지 않는 이유로는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가 80%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하루에 1시간 이상 TV를 시청하는 경우는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응답자에서 65%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독서량이 적을수록 TV를 많이 본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민목회를 하다 보면 가끔 ‘정말로!’ 시간이 없는 분들은 본다. 그분들은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구조적으로 바쁘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지금의 이민생활은 전반적으로 많이 나아졌다. 골프장, 비디오 가게가 잘 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실 문제는 ‘시간’보다는 ‘시각’에 있다. 나의 삶의 가치의 무게를 어디에 두느냐가 더 중요하다.
물론 독서가 소위 여가 ‘선용’의 가장 고상한 방법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현재의 지적수준 평균치의 급격한 하향세를 주목한다면, 여가선용을 위한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쉬운 예로, 필자의 초등학교 때 바라보았던 고등학생 친형의 위엄은 가히 대단했다. 명문고 교복에, 항상 근엄한 표정으로, 가끔 음악과 시의 명문을 논하며 까막눈 동생인 나에게 다가왔던 형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도 고등학생 되면 저렇게 되겠지 했다. 그런데 아니었던 것 같다(내 땐 평준화 시대여서 그랬나?). 지금은 어떤가? 고교생 자녀들을 둔 부모님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영 아니다. 걔들이 관심 갖고 있는 것, 걔들이 주로 하는 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잘 먹어서 덩치는 커졌는데 의식은 유아기적 수준이다. 필자는 어른들의 영향도 있다고 본다. 독자들에게 한번 묻고 싶다. 테이블 위에 ‘주부생활’과 톨스토이 명작선이 같이 있다면 무엇을 먼저 집어 들겠는가? 어느 쪽일지 쉽게 답이 나올 것이다. 고급스런 문화는 지양하고 가볍고 졸속한 문화는 지향하는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
잠시 우리교회 도서관 자랑 좀 하자. 우리교회 도서관에서는 매월 7 내지 10권의 신간을 들여온다. 그러기를 2년째. 처음에는 많이들 무관심하다가 이젠 제법 자리가 잡혔다. 새 책을 기다리는 모습도 많이 눈에 띤다. 지식이 최선은 아니지만 지식을 멸시하는 풍조가 긍정적으로 비춰지는 현대적 분위기 속에서, 목회자인 필자의 눈에는 그런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존 사이먼의 “우민화: 미국 문화의 초토화에 대한 에세이(Dumbing Down: Essays on the Strip of American Culture)”라는 책(제목부터 끔찍하지 않는가?)에서, 그는 모든 지식 세계가 불과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우리의 목전에서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화적 우민화 현상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 자녀들이 기성세대가 되면 그 현상은 극에 달해 우리의 “금쪽같은 내 새끼”들은 매우 불균형한 “어른아이”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런 현실적인 위험성에 공감하신다면 지금 어때야 할까? 오늘부터라도 아이들 앞에서 독서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줘야 되지 않을까? 그런 노력이 없이는 다음 세대에선 우리의 그 ‘금쪽’들이 ‘고철’이 되고 말 것이다. 이번 가을엔 여가선용의 패러다임을 바꿔보지는 않겠는가? 독서하는 쪽으로 말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