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가 사라지고 있다. 이익만 된다면 의리는 헌신짝이 되어 버린다. 서로 믿고 따르며 지켜주는 신의가 무너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의마저 무너질까 걱정이다. 옳고 그름을 따져 불의에 항거하는 진정한 용기는 사라지고 눈치나 보며 강자에 붙어 약자를 괴롭히는 사례가 심심지 않게 목격된다.
요즘 한인사회 단체들을 취재하다 보면 의리나 정의는 사전 속에나 나오는 단어가 된 것 같다. 이익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장사판으로 변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얼굴내기에 급급하다보니 신의나 정의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지난 3월 LA시 반상회격인 한인타운 주민의회 대의원 선거가 상호 이익만 추구하려는 한인들간의 ‘패싸움’으로 무산돼 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12월로 선거 일정이 재 조종되고 있지만 시관계자들이 고개를 내 젓는다. 커뮤니티 대책위원회까지 구성하며 대응에 나선 것까지는 좋았으나 부재자 투표(모두 한인노인들)를 이용해 뜻이 맞는 인사들만 대의원에 당선시키려 했던 한인회의 과잉대응이 나머지 한인들의 반발을 사면서 웃음거리가 돼 버렸다. 결국 주민의회 발족을 준비해온 임시 대의원들이 이를 문제 삼아 선거 하루전날 LA시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 선거 취소를 선언하는 ‘막가파식’ 대응으로 응수했다.
민주평통이 겪고 있는 일련의 혼란스런 사태도 이와 무관하진 않다.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평통회의에서 일부 LA간부들이 가지도 않은 평통위원의 이름을 도용해 여행경비(50여만원)를 대리 수령하려다 잡혀 가뜩이나 동포를 우습게 보는 한국에서 한인사회에 먹칠을 하고 돌아왔다. 주모자로 지목된 간부는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 가담 간부들도 뒷선으로 물러나면서 마무리 됐었으나 이중 한명이 최근 평통 간부로 재 등용돼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돈을 주고 부회장에 임명됐다는 소문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OC평통 지회장의 해임 및 제명 파동이 불거져 또한차례 흔들리고 있다. 급기야는 평통 간부들의 이름으로 언론들에 ‘보도를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지침서까지 내보내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져 눈살을 찌프리게 했다. 그들 말대로 ‘한인사회 대표들로만 구성됐다’는 평통의 자존심이 크게 손상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얼굴 알리기와 자기 과시에 급급한 나머지 실언과 실수를 연발하는 지도급 인사들도 적지 않다.
총영사관저에서 열렸던 국민회관 복원위원회 기금 모금 파티에 참석해 복원 기금을 내겠다고 약정했다가 10개월이 지나도록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인사들이 3명이나 된다. 3명 모두 1만 달러의 거금을 약속해 ‘의로운 인물’로 일간지 톱기사를 장식했었다. 그런데 이중 1명은 한푼도 내지 않고 있고 또다른 한명은 3,000달러에 다른 인사는 1,000달러를 내는데 그쳐 관계자의 빈축을 사고 있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옛말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일인 줄 모르고 참석했다가 얼떨결에 약정했다”부터 “말일 많은 단체라서…”, “사정이 딱해져서…”등 변명도 다양하다.
한인사회의 미래를 맡아가야 할 2세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지나치게 이기적인데다가 타운의 1세들이 너무 잘 해줘서 그런지 버릇이 없을 정도로 ‘스포일’ 됐다는 불만의 소리를 자주 듣는다.
한 단체장은 모 정치인의 한인 보좌관 이름을 들먹이며 “정치인을 한인사회에 잘 홍보해 표밭을 다져야 하는 게 보좌관의 역할인데 주객이 전도돼 한인사회가 모시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신문에 얼굴이 나고 단체장급 대접을 받는다고 해서 목이 뻣뻣해지는 보좌관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지적이었다.
미국은 의리와 명분을 중시한다. 명분만 있으면 법에서 금지하는 것도 예외를 두고 해결해 주는 나라다. 정치인들의 의리를 더 확고하다. 돈을 주지 않아도 선거 때 잠시 도왔다는 인연으로 개인 파티에까지 나타나 신의를 지키는 정치인들도 적지 않다. 손익 계산서를 따져가며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요리조리 몸을 비트는 한인사회 지도급 인사들에게 신의와 정의를 주문한다.
김정섭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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