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전역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연간 100만명에 달한다는 충격적인 발표가 나왔다.
제 2회 ‘세계 자살방지의 날’ 전야인 9일 세계보건기구(WHO)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곳곳에서 매 40초당 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한다. 자살이 전쟁과 살인을 앞지르며 인류의 13번째 사망원인으로 자리잡았다니 놀라울 뿐이다. WHO는 보고서 말미에 구체적인 방지책을 조속히 내놓지 못할 경우 2020년에는 자살자 수가 연간 15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스산한 경고까지 달아놓 았다.
보고서의 내용을 이리 저리 맞춰보니 자살건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층은 45세 이하의 연령대에 속한 남성 그룹이었다. 자살율은 60대 이상 노년층이 제일 높고, 자살 시도율의 성비는 여성쪽으로 기울지만 실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수는 40세에서 45세 사이의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사실 이 보고서가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남성의 40대는 ‘위험한 시기’로 인식되어 왔다. 어쩌면 세상살이의 성패가 갈라지는 삶의 경계선이 40대를 관통한다는 내재된 인식이 이 시기를 더욱 위험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40 섬싱’(forty something)은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집을 짓지 못한 채 방황할 것”이라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가을’을 떠올리게 만드는 나이다. 아직까지 인생의 곳간을 채우지 못한 남자들은 빈 들판을 서성이며 인생의 남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라는 두려운 예감에 오싹 한기를 느끼는 나이기도 하다.
40세는 또 인생살이의 경륜이 느껴지고, 느껴져야 할 나이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40세를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하는 나이”로 보았고, 공자는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불혹의 연령’으로 파악했다.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굳건히 뿌리를 내려 세파를 따라 요동치지 않아야 할 나이를 링컨과 공자 모두 40으로 잡은 것이다.
40세는 올림픽 육상경기에 비유하자면 예선을 통과한 선수들이 결승전을 치르기 위해 출발지점에 다시 도열하는 나이다. 예선탈락자들은 초라한 구경꾼이 되어 벤치에 앉아있거나 쓸쓸히 고국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이쯤 되면 40대가 왜 남성에게 특히 위험한 시기인지 알 듯도 하다.
한 1년쯤 전 한국에서 찾아온 후배로부터 ‘삼돌이’라는 별명을 지닌 사내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사내에게 붙여진 ‘삼돌이’라는 별명은 ‘최진사댁 셋째 딸’이라는 유행가의 가사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
이 친구는 고교시절 노래 속 주인공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여학생의 집을 찾아가 호랑이로 소문난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정식 교제 허락을 받아내 삼돌이라는, 다소 촌스럽지만 시샘 어린 별명을 얻었다. 삼돌이는 군과 대학을 거쳐 제법 규모가 큰 개인회사에 취업했고 고교시절 여자친구와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그는 43세의 나이로 ‘삼진 아웃’을 당한 채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삶을 뒤흔든 첫 번째 스트라익은 이혼이었다. 너무 오랜 교제가 오히려 화근이었는지 몰라도 이들 부부의 권태기는 일찍 시작됐다. 셋째를 낳은 후 아내가 심한 우울증상을 보였으나 눈코 뜰새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남편에겐 그녀에게 나눠줄 시간이 없었다. 아내의 자살미수 소동을 거쳐 둘이 이혼한지 2년만에 IMF가 닥쳤고, 그의 일자리도 사라졌다. 두 번째 스트라익이었다.
세 아이를 처가에 맡긴 그는 퇴직금으로 중국을 오가며 보따리 장사를 했으나 경험부족에 사기까지 당해 돈만 날리고 말았다. 그의 시체는 고향인 진해의 여관방에서 유서와 함께 발견됐다고 한다. 다시 털고 일어나기엔 아무래도 그의 나이가 너무 무거웠던 것 같다. 어쩐지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근년 들어 한기를 자주 느낀다는 동년배들이 적지 않다. 그러고 보니 계절도 나도 벌써 가을의 문턱에 서있다.
이강규<부국장 대우·국제부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