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국제 콩쿠르가 LA에서는 모처럼 지난 28일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서 열렸다. 그것도 금세기 최고의 테너라고 할 수 있는 플라시도 도밍고가 주최한 ‘오페랄리아 2004’ 성악 경연대회였다.
전 세계를 순회하면서 매년 열리는 이 대회가 4년만에 LA에서 다시 개최되어 행사장에는 청중들로 꽉 메웠다. 30세 미만의 전문 성악인 1,000여명의 서류심사를 거쳐서 그 중에서 43명을 뽑아서 초대(주최측에서 항공권과 숙식 제공)해 예선을 거쳐서 7개국 17명이 본선에 오른 만큼 출신 국가별 관객들의 응원 열기가 행사장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평소 LA오페라 공연 때에는 한인 청중은 별로 많지 않지만 이날은 한인 성악가 김우경, 심인성, 손혜수씨 3명이 본선에 오른 만큼 응원온 한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LA오페라의 스티브 김 이사, 진정우 박사, 배종훈 지휘자, 피아니스트 곽정란, LA오페라단 단원인 장진영, 최주희씨 등을 비롯해 상당수의 음악계 인사들도 콩쿠르를 지켜보았다.
플라시도 도밍고가 직접 지휘한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추어 출전자들은 주옥같은 오페라 아리아들을 불렀다. 4번째로 출연한 베이스 손혜수(28)씨는 모차르트의 돈 지오반니에 나오는 아리아로 수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었다고 조롱하는 노래 ‘카달로그의 노래’(Madamina! il catalogo)를 열창했다. 특별상을 받은 심인성(베이스-바리톤·29)씨는 소로사발의 ‘항구의 주점’에 나오는 아리아 ‘Despierta negro’를 불렀다.
대회 휴식시간에 잠깐 만난 한인 음악가들은 손씨와 김씨가 노래를 잘했으며, 다른 출연진들도 하나같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고 평했다.
이번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테너 김우경(27)씨는 14번째로 출연했다. 그는 부르기 무척 힘든 노래이지만 성악가라면 누구나 ‘정복’’하고 싶은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에 나오는 아리아 ‘정결한 집’(Salut demeure chaste et pure)을 노래했다.
이 콩쿠르를 관전했던 한인 음악 전문가들은 김씨의 음악성에 대해 ‘목소리가 미성이고 발성이 완벽하다’는 평을 했다. 그는 고음과 저음을 무리 없이 오르내리면서 완벽에 가까운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그러나 10명의 심사위원들이 장고(심사위원들은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고 너무 시간을 끌어 청중들로부터 ‘항의성’ 박수를 받기까지 했다)의 결과를 플라시도 도밍고가 발표하기 이전까지 김씨 자신도 우승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1등 발표 후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올해로 12회를 맞은 권위 있는 이 대회에서 한인 소프라노 김성은씨가 우승을 한 적이 있지만 동양인 테너가 1위에 입상하기는 김씨가 처음이라서 더욱 값진 우승이었다. 세계 무대에서 동양인 테너가 비집고 들어가기에는 서양 테너들의 벽이 두꺼운데 그가 이 장벽을 뚫었다고 볼 수 있다.
한인 음악가들에 따르면 서양 테너들에 비해서 동양인 테너들은 신체적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불리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어 도밍고 콩쿠르와 같은 규모가 큰 국제 대회에서의 1등은 기대하기 힘들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는 더욱 힘들다고 한다.
조수미, 홍혜경, 신영옥씨 등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소프라노들은 활동하고 있지만 세계 무대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한인 테너는 아직 없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 출신의 테너들도 마찬가지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보면 김씨의 이번 우승은 동양인이라서 가질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핸디캡을 극복한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유명 콩쿠르에서 우승했다고 해서 앞으로 그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테너가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동양인 테너들에게 가능성을 열어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앞으로 그의 활약이 기대된다.
문태기
특집 1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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