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의 세월, 세일즈와 함께 울고 웃은 전국구 세일즈맨 강재경씨의 꿈은 죽을 때까지 신뢰를 먹고사는 것이다.
5개국 누비며 화장품·생활용품 파는 강재경 C&M 부사장
생활용품 수입 및 화장품 생산업체 ‘C&M’의 강재경(46) 부사장은 ‘전국구 세일즈맨’이다.
반평생 넘게 살면서 대일고교 생물교사와 창고 박스보이로 있던 5년만 빼고 18년을 세일즈맨으로 뛰었다. 이제 가가호호 방문은 안 하지만 미 전역과 한국, 일본, 남미 등 5개국에 기능성 화장품 ‘바이오 플로라’와 미니 믹서기, 히말라야산 유황소금, 옥매트 등을 판다.
험난한 세일즈 업계처럼 그의 인생은 순탄치 못했다. 85년 동대문에서 원단 판매사원으로 시작한 강씨는 88년 양말 무역회사를 차려 이란, 이집트 등 세계 30여 국을 돌아다녔으나 3년만에 부도를 맞았다. 91년 달랑 18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왔으나 ‘노 머니, 노 잉글리시, 노 테크닉’인 그를 받아준 일자리는 월급 700달러의 박스보이 뿐. 93년 이혼마저 한 그는 이후 김스전기·코스모스·청호USA의 세일즈맨, 세일즈 전문회사 사장 등을 거쳐 지금의 회사에 정착했다.
“박스보이 시절 횟집 가서 회 먹는 게 소원이었죠. 가정도 친구도 깨졌을 땐 자살하고 싶었는데, 전 그럴 용기도 없는 쪼다더라고요.”
그러나 지금 강씨는 이 굴곡의 세월이 고맙다. 세일즈라는 직업을 그가 평생 갈 길로 인정하고, 당당하게 살게 됐기 때문이다.
“돌아보니까 내가 그렇게 비겁할 수 없었어요. 부모와 아내 재력만 믿고 살았거든요. 지금은 아내도 없고 부모님도 돌아가셨지만, 나 혼자 힘으로 산다는 게 행복합니다”
죽는 날까지 세일즈로 승부를 걸겠다는 강씨가 바라는 건 딱 두 가지다. 첫째는 한 아이템으로 적어도 20개국은 누비면서 세일즈맨으로서 한 획을 긋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잘못 살아온 시간동안 상처 입힌 사람들, 전처와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외동아들의 법대 학비를 대기 위해 그는 재혼도 포기했다.
“나를 팔아서 신뢰를 사는 것”이라는 세일즈 철학을 갖고 있는 강씨는 “아들이 지금의 나처럼 혼자 힘으로 살 수 있을 때까지 부자가 같이 뛸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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