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봄, 여름-’홍보차 LA에 온 김기덕 감독
영화통해 인생을 정리하는 계기로
대도시 여러극장서 상영되긴 처음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영화평 7면) 홍보차 LA를 방문한 김기덕 감독(45)은 3년전 토론토 영화제(‘수취인 불명’출품)서 봤을 때와 똑 같은 모습이었다. 자신의 상표 같은 운동모를 쓰고 수수한 복장에 투박한 모습 그리고 거의 궤변에 가까운 달변 등이 모두 그랬다. 김 감독은 마음에 있는 것을 전연 여과하지 않고 말하는 스타일인데 인터뷰를 하면서 그가 별로 미국을 좋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 내면의 어둡고 사악한 면과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비극 등 어두운 주제를 꾸준히 탐구해온 김 감독은 얼마 전 원조교제를 다룬 영화 ‘사마리아’로 베를린 영화제서 최우수 감독상을 받았다. 한국의 뚜렷한 인디펜던트 감독인 그는 이제 세계 영화제의 단골 초청손님. ‘봄, 여름-’은 뉴욕에서 지금 열리고 있는 권위 있는 ‘새 감독/새 영화’ 시리즈에 또 다른 한국영화 ‘스캔들’과 함께 출품작으로 선정돼 31일과 1일 상영됐다. 다작인 김 감독은 바쁜 작업활동 중에 서울예전에 나가 영화연출을 가르치고 있다.
-베를린 영화제서 감독상을 받은 것을 축하한다. 소감은.
▲저예산 영화인 내 영화를 한국의 폭넓은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한다.
-‘봄, 여름,-’은 LA와 뉴욕을 시작으로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워싱턴 등지로 확대 상영될 예정이다. 흥행 가능성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영화 ‘섬’이 잠깐 뉴욕의 아트하우스에서 상영된 적은 있으나 이번처럼 대도시의 여러 극장에서 상영되긴 처음이다. 미국인들은 아시안들에 대한 편견이 있어 흥행 성공에 벽이 있는데 이 영화는 나의 다른 영화들보다 내용이 보편적인 것이어서 다소 기대가 크다. 미국인들은 명상이 필요한데 이 영화를 보고 인생을 차분히 정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번 영화는 당신의 다른 영화들의 정신과 다른데.
▲과거 나의 영화들이 인간과 인생을 클로스 업으로 관찰했다면 이 것은 롱 테이크로 관찰했다고 보겠다. 나의 주제들이 묻혀서 안보일 뿐이지 사실은 같다고 봐야 한다.
-철 따라 촬영했나.
▲6월서 4월까지 계절 따라 찍었다.
-애인을 찾아 절을 떠난 소년승이 뒤에 결혼한 아내를 꼭 살해해야 했나. 거기서 김 감독의 어두운 면을 또 느낄 수 있었는데.
▲영화를 1인칭 영화로 보지 않기를 권한다. 그 사람은 다층적 인물의 대변인일 뿐이다. 여인을 사랑하고 욕정에 못 견뎌 살인을 하는 것은 인간성을 포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다분히 궤변적이다).
-겨울에 아기를 안고 절을 찾아온 여자는 왜 죽어야 했는가.
▲인과응보라고도 할 수 있고 우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스님이 세수하려고 (정화) 파 놓은 얼음 구덩이에 여인이 빠져 죽는다는 것은 필연과 우연의 한계를 모호케 만드는 아이러니라고 하겠다.
-개, 닭, 고양이 및 뱀 등은 무얼 상징하는가.
▲관객의 상상에 맡기겠지만 그것들은 모두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
-불교영화라고도 하겠는데 노승은 왜 고양이의 꼬리로 붓글씨를 쓰며 짐승을 괴롭히는가. 당신의 종교는.
▲미물을 통해 영적인 것을 해석하고 싶었다. 그냥 코미디적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기독교다.
-‘실미도’와 ‘태극기를 휘날리며’의 성공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관객수 1,000만시대가 왔으나 이런 수치는 앞으로 제작자들이 더욱 이익에만 집착하게 될 동기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영화계가 너무 블럭버스터에만 매달려 인디(독립영화사)들이 살아남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 내 영화는 그나마 전국 60개 극장에 걸리지만 많은 인디 영화들은 단 한 개 스크린에서 하루나 이틀 개봉하고 비디오로 넘어가고 있다. 그들은 구걸 개봉을 하고 있는데 블럭버스터들이 전국 스크린을 독차지하다시피 하고 있다.
-베를린 영화제서 감독상을 받은 ‘사마리아’에 관해 얘기해 달라.
▲이 영화는 원조교제 영화라기보다 인간관계의 영화다. 영화에서 주인공 소녀가 자기와 원조교제를 한 어른들을 용서하는데 그것은 어떤 징벌보다 더 큰 징벌이라 할 수 있다. 어른이 아이만 못하다. 또 이 영화는 나를 포함한 모든 남자들의 마음을 고백한 것인데 또한 한국사회의 고백이기도 하다. 섹스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하지 않은 것은 내용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무책임할 정도로 정의와 불의 그리고 선과 악을 행하는 자들의 그 어느 쪽도 편을 들지 않는데.
▲나는 나쁜 행위가 반드시 한 개인의 사상이나 인격에 의해 행해진다고 보질 않는다. 그것은 유전에 의해서 나올 수도 있고 또 사회와 환경적 요인이 큰 작용을 한다고도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공범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모든 것을 2분법으로 보지 않는다.
-LA 동포들에게 인사 한 마디 해 달라.
▲고향이 그리운 분들 그리고 각박한 이민의 도시 삶에 힘드신 분들을 비롯해 모든 분들이 보시고 마음의 평화를 찾으시길 부탁드린다. 종교에 관계없이 차분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시고 삶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셨으면 좋겠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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