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뜻 기억해야”
3월26일 서거 94주기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3월26일이 다가오면 남몰래 가슴 아파하는 이가 있다.
새크라멘토에 사는 안 의사의 손자인 안웅호 박사(71·사진)가 그 주인공. 안 박사는 항상 이맘때면 조용히 할아버지의 유품을 꺼내고 그의 뜻을 되새기며 발자취를 더듬는다.
안 박사는 “하나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할아버지의 뜻에 반하는 분단된 두 개의 한국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과거 김일성 주석의 초청을 받았을 때 방북 뒤 3.8선을 넘어서 서울로 갈 수 있었다면 초청에 응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분단 조국에 분노하고 있다.
중국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13세 때까지 살다가 독립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 안 박사는 이후 미국인 학교를 거쳤고 한국전쟁 중 간암으로 사망한 아버지(안중생 투사-당시 44세)의 장례를 치르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던 해인 1953년 모친 정옥년 여사와 함께 미국 유학 길에 올랐던 그는 중국계 미국인과 결혼하여 두 딸을 두었으나 25년 전 이혼하고 내과 의사로 정년 퇴직한 후 현재 혼자 살고 있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할 당시 2세였던 아들(중생)은 결혼 후 아들 하나와 두 딸을 두었으나 일년 전 큰딸은 사망했으며 작은 딸은 어릴 때 미국인 가정에 입양되어 호적상 안 박사가 유일한 유공자 가족으로 등록되어 있다.
그는 “한국의 훌륭한 풍습과 전통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의 뜻이 젊은 세대들에게 잊혀져 가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슴아프다”며 “반으로 갈라져 아직도 피 흘리고 있는 한국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한 할아버지는 영원히 살아있으며 지금도 숨쉬고 있다”고 말했다.
<새크라멘토-김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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