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236명의 사상자를 낸 러시아 모스크바 민족우호대학(우데엔) 기숙사 화재 참사는 다른 많은 대형 사건들에서 보듯 안전 불감증이 부른 인재(人災)였다.
화재 당시 5층 짜리 기숙사 건물에는 화재 경보기가 없었고, 비상 탈출용 계단 철문도 잠겨 있었으며, 건물 안전을 책임지는 직원들도 제구실을 못했던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
경보 장치가 없다 보니 대부분 학생들이 불이 건물 전체로 번진 뒤에나 화재 발생 사실을 알고 뒤늦게 대피해야 했다. 다른 많은 학생들은 방에서 나오지도 못한 채 연기에 질식돼 갔다.
또 불이 난 것을 알고 비상 계단을 통해 대피하려던 학생들은 철문이 굳게 잠긴 것을 발견하고 우와좌왕 하다 건물 밖으로 뛰어내려야 했다.
방안에서 불길이 코앞까지 닥친 것에 놀란 수십명의 학생들은 눈보라 치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 옷가지도 제대로 챙겨입지 못한 채 3-5층 기숙사에서 창문을 통해 무작정 몸을 던졌다.
이때문에 많은 부상자들이 팔다리가 부러지고 머리와 척추 등에도 심한 상처를 입었다. 비상 계단에 갇혀 있던 학생들은 일산화탄소 중독 증세로 생명이 위독한 지경이다.
밑에서 간단한 매트리스 등을 날라다 학생들의 투신을 도운 사람들은 기숙사 직원이 아닌 동료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이 불길을 피해 비온 뒤 낙옆 떨어지듯 잇따라 뛰어내리는 상황에서도 기숙사 당직자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고 목격자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다행히 재빨리 빠져나온 학생들도 건물 밖에서 살을 에는 추위에 떨다 동상에 걸려야 했다. 이들에게 추위를 막아줄 간단한 옷과 모포를 건네준 것도 역시 동료 학생들이었다.
기숙사측이 한 일이라고는 고작 화재가 모두 진압된 뒤 다른 기숙사 방을 돌며 학생들의 가전 제품을 압수해간 것이 전부라고 한국 유학생들이 전했다.
러시아 소방당국 부책임자인 블라디미르 로딘은 25일 TV와 회견에서 화재 당시 기숙사 건물에는 화재 경보기는 물론 유사시에 학생들을 긴급 대피시킬 비상 계획도 없었다고 혀를 찼다.
이고리 이바노프 외무장관도 이날 성명을 통해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한편으로 철저한 화재 원인 조사와 기숙사 안전 대책 강화를 약속, 사회 전반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을 간접 시인했다.
지난 24일 새벽(현지시간) 모스크바 남부 미클로호-마클라야 거리 우데엔 기숙사에서 발생한 불로 한국과 중국, 베트남, 인도, 에콰도르, 에티오피아 등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지역 유학생 36명이 숨지고 200명이 부상하는 어처구니 없는 참사가 빚어졌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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