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 참전 한인 군인 및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해 서포트 그룹을 결성한 임천구(45. 미국 명 찰리 임)위원장은 이번 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느끼는 감회가 남다르다. 자신도 미 현역군인으로 지난 82년 그라나다 전쟁에 참가, 실제 전투한데다 사랑하는 딸 로리양이 알라바마에서 이라크에 파병을 앞두고 현재 대기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당시 소련이 그라나다섬을 침공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곳 활주로를 뺏는 작전을 담당하는 미 육군 레이저부대 요원으로 참전했다. 다행히 이 전쟁은 1주만에 미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아직도 그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가 미군에 입대했던 것은 대규모 전쟁에 실제 참전해보고 싶다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면 제일 선두에 서게 되는 특수 부대인 레인저에 자원하게 됐다. 73년 부모를 따라 미국에 이민와 뉴저지에서 고교를 졸업하던 해로 당시 18세였다.
10년 반 동안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한국에서 3년, 독일에서 1년, 파나마에서 6개월, 알래스카에서 6개월을 지냈다. 나머지 기간은 모두 미국에서 9사단부터 시작, 4, 2사단, 19지원대, 베를린 연대 등에서 복무했다. 군대에서 그는 탱크, 전차, 대포, 방공포 등 각종 무기 사용법과 공수, 보병, 유격 등 다양한 훈련 등을 받았다.
그의 맏딸 로리양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미군이 된 것은 9.11 테러 사태가 계기가 됐다. 로리양은 나라를 지킨다는 일념으로 아리조나에 있는 미 공군 정보학교에 입교했다. 로리양은 학교를 졸업한 후 현재 통신 정보대원으로 다음 전쟁에 출정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로리 양은 군에 입대하기 전 올바니 주립대에 입학, 2학년을 마친 상태였다. 임 위원장에 따르면
딸이 군에 입대하기 전 "젊은이들이 군대가는 것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물어 "좋게 생각한다. 남자라면 한번 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여자인 로리가 스스로 시험보고 군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로리양은 "현재 비밀업무에 있기 때문에 자세한 말은 할 수 없다"며 "이번 주말까지 있다 또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게 된다"는 말만 전해왔다는 것이다. 임 위원장은 그런 로리 양이 "너무나 대견스럽고 자랑스럽기만 하다"고 말한다. 이같은 배경 때문에 임씨는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곧바로 전투에 참가한 한인미군들과 그 가족들을 도와야겠다고 판단, 서포
트 그룹을 조직하고 본격적으로 관련 일을 하고 나섰던 것.
현재 이라크전에 참전중인 한인미군들의 수는 1,200명 정도로 보고 이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옐로 리본 캠페인과 위문품 보내기 운동, 부모들이 서로 만나 정보교환 및 위로, 격려하는 자리 마련으로 그는 어느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런 결과 부모들이 서로 서로 의지하게 되고 덕분에 서포트 그룹에도 부모들의 전화가 많이 걸려오고 있다.
내용은 주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참전자녀에게 위문품이나 편지 등을 보내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하는 것이다. 또 상주하고 있는 부대소속을 정확히 알려달라는 주문도 많이 받고 있다. 그래서 부모들이 도움을 받고 기뻐하는 것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난데없이 한국의 MBC 프로그램에서 연세대 노정선 교수가 미군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것에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 현지 사정도 잘 모르면서 함부로 망언을 하는 바람에 자신을 포함한 전체 한인 미군들과 부모, 나아가서는 현지 동포들의 이미지를 크게 손상시켰기 때문이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생각에 본격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최근 뉴욕을 방문한 박관용 국회의장에게 노 교수를 포함한 방송국의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한국정부는 물론 노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연세대학측에 항의 성명서를 보내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임 위원장은 "지난 9.11 테러 후 젊은이들이 애국심 때문에 많이들 군대에 가고 또 일부는 공부하고 경험도 쌓아서 제대후 자기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군인이 되는 사람이 많다. 그럼에도 이런 발언을 해 상처를 주게 되었다"며 "다시는 망언이 안나왔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한다. 임 위원장은 현재 브루클린에서 주류도매업을 17년째 하고 있다.
이 분야가 예상외로 어려워 그동안 시장개척에 많은 어려움이 겪었지만 한 길을 죽어라 파고들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있다. 이 분야는 시장규모가 너무나 커 자신의 비즈니스 수위가 어느 정도 자리는 잡혔지만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오르기까지는 아직도 시간과 투자가 많이 필요하다. 그것은 이 업종의 한 단계 차이란 보통 수백만, 수천만 달러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시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를 하다보면 어려운 점도 많지만 임 위원장은 "미국에서 살면서 여러모로 혜택을 많이 받고 살고 있다"고 말한다. 누구든지 일하는 만큼 기회가 오기 때문에 자신은 미국을 참 좋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꿈을 가질 수 있는 나라, 이곳에서 돈도 웬만큼 벌었고 이제까지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며 살았다. "군대에서 온갖 극기훈련을 다 거쳐 몸이고 정신이고 단련돼 이제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보인다.
군대에서는 물론, 사회에서도 죽음과 삶을 오갈 정도로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모두 돌아보면 보람있고 도움이 되는 일들이라 지금까지 지나온
생활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는 것.
그는 봉사에도 남다른 관심이 있다. 이미 지난 90년도부터 미군 재향군인회 회장에 이어 브루클린 한인회 이사장, 제25대 뉴욕한인회 부이사장, 한인회 부회장, 북부 퀸즈 경찰 자문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고 이번에도 아시안 경찰 자문위원회 차기 의장으로 선임돼 봉사하게 되었다. 임 위원장에게는 군대복무 중 만나 결혼한 부인 임창숙(45)씨와의 사이에 로리 양 말고도 둘째 딸 실비아(20. 빙햄튼 주립 대)양이 있다.
그는 참전 경험이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번 이라크전과 관련, "이제는 전투방식이 완전히 틀려 너무나 놀랐다"며 "최첨단의 정보력 때문인지 초반부터 이라크군의 반격 한번 없이 그대로 밀고 들어가 수도 바그다드를 함락하게 됨으로써 전쟁이 빨리 끝나게 돼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번 전쟁에 나간 한인미군 젊은이들에 대해 나라를 위해 명예롭게 의무 다하고 사는 것도 보람있는 삶"이라며 "국가에서는 군에 입대할 경우 그만큼 혜택을 많이 주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군대에 들어가 특별한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그는 또 이 땅에 살아가는 한인 젊은이들에게 ‘나라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까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까를 항상 생각하고 그런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남긴 명구를 꼭 말해주고 싶다고 강조한다. 그의 남은 꿈은 이제 60세가 되면 반드시 은퇴해 본격적으로 한인사회를 위한 봉사를 한다는 것이다. 또 생전에 한인사회에 미국의 디즈니월드처럼 한 눈에 한국을 볼 수 있는 한국판 민속촌을 건립하는 것이 희망이라고 한다. 앞으로 남은 15년 동안 열심히 일한다면 틀림없이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갖게 한다.
<여주영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