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 소녀의 눈을 통해 두 남녀의 애틋한 정을 그린 주요섭의 단편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신상옥 감독에 의해 영상화돼 ‘맑고 절제된 사랑’의 모델로까지 여겨졌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수많은 독자와 관객의 마음을 당긴 데는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주무대인 ‘사랑방’이라는 설정도 한 몫 했다.
전통 한옥에 있는 사랑방은 풋풋한 정을 주면서도 질펀하지 않고 대체로 넓지 않지만 손님에게 아낌없이 내어 주는 넉넉함을 지닌다. 사랑방뿐 아니라 여러 식구가 함께 자던 안방, 화로 주위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밤을 구워 까먹던 건넌방 등등 방은 단순히 비나 눈을 가리는 곳이 아니라, 삶을 따뜻하게 해준 ‘온실’이었다.
‘방’은 정치권에서도 두루 쓰였다. 고려 무신 정권기를 조명해 최근 막을 올린 사극 ‘무인시대’에서 등장할 중방, 정방 등 궁궐 내 정치집회소에도 방을 붙였다. 또 조선시대에는 대군, 왕자, 공주, 옹주들이 기거하는 집을 궁방이라고 했다.
요즘엔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노래방이 자리를 잡았고, 몸이 찌뿌드드할 때 땀을 쭉 뺄 수 있는 찜질방도 ‘가까운 이웃’이 됐다. 학업을 돕는 공부방도 ‘방’이 갖는 긍정적인 의미를 활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방은 쓰임새가 다양하다.
비 온 뒤 솟는 죽순같이 들어 선 PC방도 출발은 ‘방’이란 단어가 주는 동아리 느낌을 비즈니스에 활용했음직하다. 헌데 PC방에 대한 학부모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LA에 사는 K씨는 “중학생 아들이 PC방에 자주 가도 맞벌이 부부라서 뾰족한 수가 없다”며 염려했다. 비행청소년들의 출입이 빈번한 LA의 한 PC방에 아이가 겁없이 드나들자 외곽지역으로 이사간 P씨는 “동네에서도 용케 PC방을 찾아내 걸어서 가곤 한다”며 혀를 내둘렀다.
PC방과 그 주변에서 폭력 등 범죄가 자주 발생하자 LA 시정부가 강력한 규제 의지를 표명하고 해당기관에 구체적인 방안 마련을 지시했다고 한다. 경비원을 상주시키고 출입 연령을 엄격히 제한하며 어두운 실내를 한결 밝게 한다는 방침이란다.
아들을 따라 PC방에 들어가 보았다는 C씨는 “PC방과 관련한 하드웨어에 대한 규제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즐기는 게임이 십중팔구 폭력물이라 실제 폭력에 둔감한 사회인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개인뿐 아니라 나라간에도 폭력에 폭력이 꼬리를 무는 세상이라 ‘PC방 시대’를 사는 자녀들에 대한 우려가 기우만은 아닐 성싶다. PC방을 ‘방’다운 ‘방’으로 만드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연유다. 시 정부의 캠페인에 동참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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