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성탄 분위기는 확실히 썰렁하다.
9.11 테러 직후이던 작년 연말에만 해도 이렇진 않았던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집집마다 반짝이던 크리스마스 장식이 현저하게 줄었다.
보통 추수감사절이 끝나고 이맘때면 오색으로 불을 밝힌 각종 장식이 한집 건너 밤마다 불야성을 이뤘는데 올해는 예년의 절반도 안 되어 보인다. 그걸 피부로 느끼는 이유는 아들과 함께 해마다 성탄 장식을 관심 있게 봐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다 그렇겠지만 아들은 애기때부터 반짝이 장식만 보면 ‘반짝반짝’ 두 손을 돌리며 난리를 쳤다. 어찌나 좋아했는지, 일부러 날 잡아서 예쁘게 장식한 집들 구경 다니는 것이 연례행사였다. 그때 하루에 수십번도 더 불렀던 주제가가 있다. ‘반짝반짝 작은별 아름답게 비추네’로 시작하는 동요인데, 영어로는 ‘트윙클 트윙클 리틀 스타’가 되고, ‘A B C D E F G~’하는 알파벳 노래도 되기 때문에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지겹도록 부르는 노래다. 우리는 이 노래의 가사를 약간 바꾸어 몇 년을 불렀는지 모른다.
‘반짝반짝 작은별, 원겸이 별은 꼬마별, 엄마별은 천사별, 아빠별은 돼지별, 반짝반짝 작은별, 원겸이 별이 제일 예뻐요’
이 노래를 합창하며 신문에 나오는 곳들을 일부러 찾아가서 보기도 했고 그리피스 팍에도 여러번 갔었다. 물론 우리 집에도 어설프게나마 장식을 했다. 단독주택에 살 때는 지붕과 현관을 돌아가며 둘렀고, 아파트로 이사온 후에는 리빙룸 창에만 데코레이션을 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도 일렉트릭 라잇을 잔뜩 둘러,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불을 모두 켜면 온통 번쩍거리는 것이 괜히 연말 기분에 들뜨곤 했다.
지난 수요일은 남편의 생일이었다. 아침에 미역국이라도 끓여줄까 했는데 워낙 아침엔 빵을 먹는 습관이 되놔서 생략했다. 대신 식구들의 생일에 늘 그러하듯 저녁은 외식을 했다. 지난 번 내 생일날 갔던 ‘라우리스 프라임 립’(Lawry’s Prime Rib)을 아들이 강력하게 원해 또 거길 갔다.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너무 명소화되어 사람이 바글거리는 이 집은 한두번 와보면 됐지, 음식을 진정 즐기기 위한 집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아들은 웨이트리스가 샐러드 보울을 멋지게 돌려 드레싱을 섞는 모습이라든지, 금방 구운 아이다호 감자에 각종 타핑을 섞어주는 서비스, 셰프가 카트를 끌고 다니며 테이블 앞에서 원하는 고기부위를 직접 잘라주는 분위기에 현혹돼 이곳이 최고인 줄 안다. 그리고 이번에도 몇번이나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샐러드와 빵을 너무 많이 먹어 정작 고기가 나왔을 때는 반도 먹지 못했다. 식당 안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넘쳐났다. 수백개는 족히 되어보이는 포인세티아 화분들과 화려한 성탄장식이 그 넓은 홀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 또 영국식 복장으로 멋지게 차려입은 캐롤러 4명이 테이블마다 돌며 손님이 원하는 캐롤을 무반주 4부혼성으로 노래해주어 특별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나 식당을 나오니 거리는 또 다시 썰렁하다. 집집마다 아름다운 장식이 줄을 이었던 행콕팍 집들도 조용하고, 매년 최고의 데코레이션으로 매스컴을 탔던 3가와 림파우의 한인 소유 집도 2~3년전부터는 아예 장식을 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사는 팍 라브레아도 예년같으면 고층빌딩 창 밖으로 반짝이 장식이 꽤 많이 보였는데 올해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주말엔 늦었지만 트리를 한 그루 사다가 장식을 했다. 나무 냄새가 향기롭게 집안을 채우고 반짝이도 돌아간다. 트리 밑에 선물을 차곡차곡 쌓아두면 좋으련만 아들 녀석은 뭐든지 들어오기가 무섭게 뜯어버리니 도무지 영화속에 나오는 스윗홈 장면을 연출할 수가 없다.
다음주 수요일은 크리스마스 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따뜻한 성탄절을 맞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메리 크리스마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