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닥터지바고 주제곡으로 그레미상
50·60년대 풍미… 레코드 100장
영화 닥터 지바고의 주제곡 ‘Somewhere My Love’(일명 라라의 테마)를 비롯, ‘베사메무쵸’ ‘뉴욕, 뉴욕’ 등 히트곡을 취입한 유명한 작곡가, 트럼본 주자겸 악단장 레이 카니프가 지난 주말 LA에서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카니프는 음악게 생활 60년 동안 100장이 넘는 레코드를 출반했고 톱 40 앨범도 25개나 탄생시켰다.
‘Somewhere My Love’ 레코드로 그레미상을 수상한 카니프는 10개의 골드 레코드와 두 개의 플레티넘 레코드를 기록했다.
카니프가 창단한 레이 카니프 오케스트라 앤 싱어스는 가사없는 합창과 경음악 반주로 1950년대와 60년대를 풍미했다.
빅밴드 시대의 연주가 버니 버리건, 밥 크로스비, 앙티 쇼 등과 트럼본 주자로 음악계에 발을 디딘 카니프는 1951년 컬럼비아 레코드 전속 편곡자로 새로운 출발을 했다.
카니프는 자니 마티스의 ‘Chances Are’, 프랭키 레인의 ‘Moonlight Gambler’, 자니 레이의 ‘Just Walking in the Rain’ 등 히트곡들을 편곡했다.
1956년 컬럼비아 레코드는 카니프를 연주가로 데뷔시켰다.
여덟 명의 남녀 혼성 합창과 18인조 빅밴드를 결합시킨 카니프의 첫 앨범 ‘S` Wonderful’은 그대로 적중, 톱 20 차트를 9개월이나 장식했다.
잡지 ‘맥콜’은 카니프에 관한 1962년 기사에서 “그의 합창단원들은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들의 목소리를 목관악기처첨 다룬다”고 호평했다.
기악 편곡을 중심으로 한 그의 이지 리스닝 계열의 음악은 팽창하는 기성 세대층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카니프는 ‘Laughter in the Rain’ ‘I Write the Songs’ ‘I`d Like to Teach the World to Sing’ 등의 히트곡으로 1970년대까지 인기를 누렸다.
1916년 매서추세츠 애틀보로에서 출생한 카니프는 부모로부터 음악적 재능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밴드 리더겸 트럼본 주자였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고등학교 시절 밴드를 이끌었던 카니프는 보스턴을 거쳐, 1930년대 중반 뉴욕으로 이주, 연주자겸 편곡자로 활동했다. 1937년 버리건을 만난 카니프는 1939년 할리웃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카니프는 잠시도 자기 개발을 쉬지 않았다. 오랜 기간 꾸준하게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한 음악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