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일이다. 아버지 조지 부시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걸프전 승리 탓이었다. 민주당의 거물들은 당시 모두 대선 출마를 회피했다. 결과는 뻔해 보여서다.
한번 패배자로 낙인이 찍히면 설 곳이 없다. 이게 미국의 정치판이다. 미국의 정치에서는 그러므로 ‘대권 3수’는커녕 ‘재수’도 있을 수 없다. 대선 출마를 꺼린 게 바로 이런 이유였다.
민주당 대선 예선전은 결국 무명끼리의 각축장이 됐다. 이름하여 ‘일곱 난쟁이의 싸움’. 그 일곱 난쟁이 중의 하나가 빌 클린턴이었다.
그런데 클린턴의 주장이 아주 엉뚱했다. 민주당의 대선 승리는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비교하자면 부시는 2차대전 후 처칠과 같은 처지에 있기 때문에 걸프전 후 대선은 민주당 필승으로 낙착된다는 주장이었다.
영국인들은 평화가 오자 2차대전의 영웅 처칠을 버렸다. 처칠은 어디까지나 전시 지도자용 인물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같은 논리가 부시에게도 적용된다는 주장이었다.
선거 결과 부시는 ‘난쟁이’로 취급된 무명 정치인 클린턴에게 패했다. 처칠 비교론이 적중한 셈이다.
‘비상시에는 비상한 사람이 있어 비상한 공을 이룬다’-. 처칠을 두고 한 말 같다. 아무도 히틀러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시절, 나치의 위험을 감지하고 끊임없는 경고를 하고 또 결국은 나치 히틀러의 공격으로부터 영국을 지켜낸 인물이 처칠이다.
조지 W. 부시, 조지 부시의 아들이 이번에는 처칠과 비교되고 있다. W. 부시를 처칠과 비교하고 나선 사람은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현대판 나치 히틀러이고, 이 후세인이 지니고 있는 위험성을 간파, 홀로 강경대응을 주장하고 있는 W. 부시는 바로 1930년대 후반기의 처칠과 비교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어딘가 간지럽다. 1930년대 독일과 현재의 이라크는 웨이트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은 당시 랭킹을 다투는 세계 열강의 하나로 수퍼 헤비급이었다. 이라크는 라이트급에도 못 미치는 존재다. 그렇다고 부시가 처칠을 전혀 닮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어떤 위험을 감수하든 독재체제에는 단호히 대처해야 하고 또 가능한 조기에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흡사점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W. 부시는 정말로 비상시에, 비상한 일을 맡기 위해 태어난 사람일까. 아직은 두고 볼일 같다. ‘악의 축’의 하나인 사담 후세인을 분쇄한다는 전쟁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아 하는 말이다.
<옥세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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