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자신이 애처가인지 공처가인지 몰라 궁금한 남성이 있을까?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아내의 젖은 손을 바라보며 ‘애처로워 가슴이 아프면’ 애처가이고, ‘왠지 불안해지면’ 공처가이다. 청소, 설거지등 집안일을 ‘취미 삼아’ 하면 애처가이고 ‘의무 삼아’ 하면 공처가이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조크인데 일리가 있다. 이 간단한 구분법에서 자신이 공처가로 판명된 남성은 이제부터 건강을 좀 조심해야 하겠다. 공처가들은 수명이 짧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예일대학 연구진이 300여쌍의 노부부를 대상으로 6년간 조사한 바에 의하면 부부사이의 관계의 성격이 남성의 기대수명과 무관하지 않다. 가장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난 유형은 순종적인 아내를 데리고 군림하며 사는 남성. 남편은 ‘하늘’이고 아내는 있는 듯 없는 듯 소리 없이 사는 가부장적 전통의 부부관계가 남성의 장수에는 가장 좋다는 결론이다.
한편 드센 아내 옆에서 눈치보며 사는 공처가는 가장 기대수명이 짧고, 남편과 아내 모두 성격이 강해서 늘 부딪치는 부부의 경우 남녀 모두 전통적 부부에 비해 기대수명이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얼마나 마음 편하게 스트레스 안 받으며 사느냐가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면 조사결과는 쉽게 이해가 된다. 집안에만 들어서면 밥상이 차려지고, 신문이 대령하고, TV채널이 바뀌며 식구들이 리모콘이 되어 떠받들고, 행여 밖에서 기죽는 일 있을까봐 ‘남편 기살리기’지혜까지 동원되는 환경에서 큰소리 치며 산다면 타고난 수명을 못 사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이번 연구결과로 새삼 연민의 시선이 쏠린 부류는 공처가들. “평생 마누라에게 쥐여사는 것도 불쌍한데 수명까지 짧다면 얼마나 억울한가”라고 남성들은 소외된 동료집단에 대해 동정을 아끼지 않는다.
공처가란 무엇인가. 아내가 무서워 절절 매는 남편을 희화한 말이다. 배우자에게 꼼짝 못하고 눌려지내는 사람들은 남성과 여성 두 부류가 있다. 전자는 공처가라고 부르고, 수적으로 비교가 안되게 많은 후자는 이름이 없다.
남편이 아내에게 꼼짝 못하는 건 일상적 현실과 동떨어진 별난 일이어서 이름을 붙여 우스개로 삼을 여지가 있지만 아내가 남편에게 꼼짝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못해 의무인데 무슨 이름이 필요가 하겠는가.
성벽같이 굳건하던 가부장제에 틈새가 생기면서 변화하는 세태를 빗대어 등장한 말이 공처가이다. 이어 그 차세대로 등장한 말이 얼마 전까지 유행하던 ‘간 큰 남자’이다.
‘간 큰 남자’란 - 아내가 외출할 때 어디 가느냐고 묻는 남자, 아내가 산 옷값을 묻는 남자, 아내에게 배고프다고 말하는 남자, 아내가 TV 보는데 채널 돌리는 남자 … 그리고 아내가 ‘간 큰 남자 시리즈’를 얘기하는 데 듣지 않는 남자.
이 시리즈가 우스개로 성립되는 이유는 남성과 여성의 간의 크기가 뒤바뀌어 사람이 개를 무는 코미디 같은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 부부관계에서 남편은 간이 큼직하고 아내는 간이 콩알만해서 상하 수직의 질서로 안정을 유지했다.
그런데 기존의 질서가 조금씩 흔들리고,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남성들이 느끼는 당혹감, 혹은 일말의 불안이 이런 조크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요즘 여자들 간이 자꾸 커지고 있는데 잘못하다간 이런 우스운 일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간 큰 남자 시리즈’의 숨은 내용이 될 것이다.
모든 수직적 관계는 밑에 있는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기본으로 한다. ‘공처가’나 ‘간 큰 남자’는 배우자에게 눌려지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남성들이 직간접으로 경험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쪽으로 쏠렸던 가정내 부부의 힘의 판도가 균형을 잡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집안일은 여전히 여성에게 ‘의무’이지 ‘취미’가 아니고, 아내가 남편의 ‘젖은 손’을 애처롭게 바라볼 일은 거의 없다.
공처가가 받는 스트레스가 수명을 단축시킬 정도라면 대다수 여성들이 권위적 남편 밑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어떤 결과를 낳을까. 한국 여성들에게 흔한 주부 화병이 그 한 예가 된다. 배우자중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누르며 군림하는 관계는 이제 진화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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