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없었으면 좋겠다!”
며칠전 퇴근시간에 신문사의 한 동료가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타며 말했다. 옆에 있던 미혼의 후배들은 무슨 말인지 감을 못 잡았고, 자녀가 고만고만한 동료들은 얼굴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 “왜 아니야!”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 집에서 하루종일 지내게 되면서 집집마다 비상이 걸렸다. 아이들의 여름 10주를 어떻게 감당해 나갈지 “골치가 지끈거린다”는 부모들이 많다. 아이들의 신나는 방학 - 부모들의 곡예가 시작되었다.
방학은 자녀들에게 다양한 산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마음껏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함으로써 적성도 발견하고 잠재능력도 키워줄 수 있는 시기이다. 교육전문가들은 그래서 산으로 들로, 유적지와 박물관, 운동 경기장 등지로 자녀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현장에서 역사도 배우고 문화도 배우게 하라고 추천한다.
방학이 되면 약속이나 한 듯이 자녀를 서머스쿨·학원에 보내는 한인부모들의 선택은 종종 교육가들의 도마 위에 오른다. “점수는 조금 높일 지 모르지만 경험의 폭이 좁아 상급학교 진학, 주류 사회 진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한인운영 학원에서 한인 학생들끼리 몰려다니다 보면 좋은 것보다는 나쁜 영향을 더 받는 경우들도 있다”… 그 보다는 재능을 살려줄수 있는 특별활동으로 자녀들이 심신에 신선한 자극을 받게 하라는 충고들이다.
그러나 이런 조언을 듣는 부모들의 마음은 답답하다. 10대의 남매를 둔 한 주부는 말한다. “문제는 돈과 차편이에요. 유명 대학들이 제공하는 좋은 프로그램들을 알아보면 비용이 엄청나요. 박물관, 유적지 방문도 아이들이 저 혼자 다닐 수 없는 미국에서는 그림의 떡이지요. 맞벌이 부부들에게 아이들 방학은 보통 고민거리가 아닙니다”
최선은 아닌 줄 알지만 자녀들을 무작정 집에 둘수 없고, 할 일도 주면서, 일단 공부하는 환경이면 안심이다 싶어 부모들이 선택하는 것이 학원, 서머스쿨, 도서관 정도이다. 그런데 자녀가 여럿이다 보면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방학이 없었으면…”하던 동료는 초중고교에 다니는 세아이의 아버지이다. 아이들 방학이 되면서 그 집에서는 아내가 근무시간을 오후로 바꾸었다. 아이들 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곡예하듯 이어지는 이 가정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아빠가 아침에 출근하면서 둘째를 인근 칼리지의 서머스쿨에 등교시킨다. 오후 1시에 엄마가 둘째를 픽업해 세 아이에게 점심을 먹인 후 11학년인 첫째를 SAT학원에 데려다 준다. 두 아이들을 집에만 둘 수없어 엄마가 출근하기 앞서 데려다 놓는 곳이 학원 근처 도서관. 오후 6시 학원수업이 끝난 첫째가 도서관으로 와서 동생들과 합류, 삼남매가 모여 있으면 아빠가 퇴근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귀가한다.
“막내는 하루종일 빈둥대며 보내지요. 하지만 막내까지 무슨 프로그램에 보내려면 재정적 부담이 너무 커요. 그러니 대책없이 도서관에 보내는 것이 지요”
종종 보호자 없이 하루종일 떠도는 아이들 때문에 도서관 사서들이 곤란을 겪고, 태권도 배우러 와서는 수업이 끝나도 몇시간씩 남아있는 아이들 때문에 태권도 사범들이 골치를 앓는 배경에는 부부가 직장에 매여 옴짝달싹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여의치 않은 서민 이민가정들의 애환이 있다.
많아야 둘셋인 아이들 키우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옛날의 어머니들은 어떻게 7~8명의 자식들을 키웠을까. 내 자식, 네 자식 가리지 않고 한 동네 아이들이면 으레 같이 거둬주던 동네 아낙네들의 후한 인심 덕분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홀로 있을 수도, 차편이 없으면 어디를 갈수도 없는 미국에서, 게다가 여름방학이면 절실히 필요한 것이 ‘동네 인심’이다. 가까운 이웃이나 같은 교회 내만 둘러 봐도 절절 매는 가정은 금방 눈에 띌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 혹은 방학중 한번이라도 집안에 갇혀 지내는 아이들을 공원에 데려가 보자. 아이들 픽업 시간 맞추느라 허둥대는 친지를 대신해 한번쯤 운전을 해줘 보자. 그 아이들, 그 이웃에게 그 보다 큰 선물은 없을 것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