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밑머리 5cm이상 절대불가 건만 우리는 치렁치렁 기른 머리위로 갖은 장식을 해꽂길 바랬고 무릎밑의 치마길이로 떠들썩한 단속을 해대면 두세단 걷어진 허릿단이 슬그머니 내려올뿐 선생님들의 명분을 위한 행동지침들은 우리들에겐 소귀에 경읽기 같은거였다.어떻게든 어긋나기를 즐겨했던 고약한, 하지만 숨막히는 단속들에서 제 꿈을 잃지않던 아름다운, 여고시절의 한 친구가 있었다.
제 미래들의 무한한 호기심과 수줍은 행동거지로 열병을 앓을 때,위안을 주었던 친구들, 그 친구들의 따뜻한 어깨와 공부시간중 건네고 건네졌던 정겨운 쪽짓말, 오해로 생긴 다툼뒤에 며칠밤을 뒤척이던 괴로움, 몇밤을 새며 시험공부를 하던 독서실의 그 자리 그 시절의 당연함이 요사이엔 눈물나게 애처롭다. 그 시절의 한때를 가슴깊이 공유하며 자랐던 친구였는데... 근 10여년의 열렬한 사랑으로 둘을 꼭 닮은 아이와 그리도 예쁘게 살던 친구의 파경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중증의 무기력증에 빠지게 했다.
그리도 행복할수 있었던 그 부부는 늘 질투의 대상이었었다. 일주일에도 몇번씩 싸워댔던 우리에게는 더욱이 말이다. 연애때부터 치자면 거의 20년을 살아온 사람끼리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바라며 자식을 나누고 돌아설때는 얼마나 큰 고통과 시련이 있었을까. 누구나 그 상황이 되어보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사연들이 가득이지만 깨지지 않고사는 부부에게도 서로 비슷비슷한 무게들의 사연들은 있을 것이다.
내가 또한 파경의 위기를 극복했던 것은, 진정으로 사랑해서 선택했고 그 사랑으로 너무 소중한 아이들이 있고 그 아이들에겐 세상에서 젤 좋은 엄마와 아빠가 사는 이 울타리를 우리가 깰수는 없었다. 밥 먹는 것조차 꼴보기 싫은 남편이지만, 꼬질꼬질한 운동화를 보면 가슴한쪽이 시리고 쓰린 십여년을 넘게 살아온 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세상의 젊은 남녀에게 이렇게 말해주고싶다. 보고있으면 눈물 날만큼 너무너무 사랑하면 결혼하라고 말이다. 그 끈이 결혼생활의 위기를 극복해줄 것이다. 앞으로의 불분명하며 어려운 또 다른 시작의 길을 의기소침해져 두문불출할 그 친구에게 파경의 위기에서 멀리있어 간섭못하고 위로하지 못한 나를 용서하며 씩씩하게 살을것하며 꼭 더좋은 일이 있을 것을 확신시켜 주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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