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로 매일 메오리얼 데이가 되면 우리 온 가족은 나은이가 묻힌 곳을 찾아간다. 유난히 얼굴이 희고 짙은 눈썹에 눈만 마주치면 눈웃음치며 웃던 순한 우리 아기이었다.
1986년 봄을 가장한 혼돈의 계절이었던 이월 말 아침에 아기의 싸늘한 얼굴을 발견하였던나는 사고의 기능이 정지된 가운데 911도 부를 수 없었다. 그 전 날밤 둘째 아이가 칭얼대는 바람에 6개월 난 아기를 혼자 재우며 이불 덮어 주려고 그 방을 몇 번 들락거리며 밤새잘 자는 줄만 알았다. 새벽 4시경 꼼짝하지 않고 누워있는 모습이 조금 이상했지만 전혀 그런 일이 일어났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마침 밤일을 마치고 온 남편과 함께 병원에 데려갔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이었다. 부검결과 유아들에게 발생하는 SIDS(Sudden Infant Death Syndrome)로 밝혀졌으며 생후 12개월 전후의 유아 1000명중 2-3명 꼴로 발생한다는원인 불명의 돌연사다.
우리 부부는 아기의 돌연한 죽음을 용납할 수 없었고 아기에게 관한 대화도 할 수 없었다. 건드리면 봇물처럼 터질 것 같은 슬픔을 다스릴 자신이 없으므로 건드리면 봇물처럼 터질 것 같은 슬픔을 다스릴 자신이 없으므로 아예 마음 깊숙이 꽁꽁 묻어두기만 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면도날로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과 죄책감, 그 시뻘건 상처 위에 소금을 뿌린 것 같은 얼얼함을 지닌 채 여러 해를 지냈다. 십년만에 처음으로 묘비 위에 섰을 때 흐릿한 액체 속으로 익숙한 남편의 필체로 쓰여진 "저기 더 나은 사랑이" 라는 글귀가 들어 왔다. 순간 해 맑은 미소를 띤 우리 나은이가 이 세상보다 더 좋은 더 나은 사랑이 있는 하나님의 가든에서 뛰놀고 있는 장면이 연상되며 하늘의 위로가 임하였다.
이 위로는 우리 아기가 죽음을 뛰어넘어 영원히 살아 있음을 느끼게 했으며 고통과 슬픔을 환희로 바꾸어 놓았다. 그날 이후로 내 마음속에 살아 움직이는 어여쁜 아기의 존재를 자각하며 절대 주권자의 존재에 더욱 가까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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