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 께서는 성품이 어질고 모든면에 긍정적이신 분이셨다.
당신이 배아파나신 큰아들의 며느리로 그녀와 한가족이 되었고 한지붕 밑에서 살림의 지혜를 배웠다. 1년반동안의 캐나다생활후 미국에서 다시만난 어머님은 윌체어에 의지한체 생활하고 계셨다. 집안에 폭풍이 지나간후 시부모님 께서는 우리집으로 거처를 옮기셨고 우리부부와 두남매는 그동안 챙겨드리지 못한 죄송함에 최선을 다했다.
대화나눌 사람없어 종일을 데이케어에서 졸다오시는 어머님은 중풍에 파킨슨이라는 무서운병에서 치매라는 병까지 다가왔고 우리부부는 미련하게도 데이케어에 모든것을 의지한체 바쁜삶을 살았다. 큰아이의 대학 오리엔테이션 참석을 위해 집을비웠을때 할머니를 보살피던 작은아들의 급한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가 카페트에 대변을 많이 싸셨는데 어떻게하냐고......어머니의 병세가 심해지자 오렌지카운티에 사는 고모는 자기집 10분거리에 좋은 양로병원을 찿았다고했다. 60여명의 한국노인들이 생활하고 계신 그곳에는 한국음식이 제공됐고 바쁜 스케쥴 속에 어머님의 치매는 조금 나아지신듯했다.
아버님 또한 폭풍의 휴유증으로 쓰러지셨고 평생을 곁에서 살아온 동반자의 빈자리에 외로움을 타셨던 아버님은 병원지시에 따라 어머님계신 양로병원으로 들어가셨고 낮에는 수족노릇을 해주는 병원분들께 의지하고 저녁에는 고모의 보살핌속에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계신다. 한국사회에서는 양로병원이 생소하고 가족에게 외면당하는 분들이 모여살아가는곳 같지만 지금도 외진방 한켠에서 행동의 제한을 받으며 사람을 그리워하는 쓸쓸한삶을 살아가는것 보다는 즐거운게임과 대화할수있는 친구, 매일의 예배안에서 삶의기쁨을 찿을수있지않을까? 우리모두는 살아있는동안 건강하기를 소망한다.
병들고 늙고 끝에는 인생을 마감하는 삶의 여정속에서 부모와자식, 남편과가족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만남. 순수하고 포근한 인간미를 지니셨던 어머니와 열여덟에 홀홀단신 월남하시어 모든 것을 일궈내신 아버님의 호탕하신 웃음이 머리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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