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도예프스키는 "삶에 의미가 있다면 고통에도 반드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고통에는 뜻이 있다. 고통은 역설적인 축복이다. 고통이 없다면 환희도 없다. 행복은 고통의 열매이다. 고통 때문에 흘린 눈물로 우리 영혼의 창은 깨끗해진다.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고통받는 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세익스피어는 "상처를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남의 흉터를 조롱한다"고 말했다. 고통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고통받는 자를 조롱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통을 받으셨기에 고통받는 자를 위해 눈물을 흘리셨다. 이것이 고통이 주는 신비이며 하나님의 은혜이다.
인생이란 기쁘고 환희에 찰 때도 있지만, 고독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도 많이 있다. 왠지 짜증이 나고 내 자신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은 잘 되는 것 같은데, 나의 일은 자꾸 막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끝이 안보일 때도 있다. 그럴 때는 통곡하고 싶고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때가 바로 한번 죽는 것보다 매일 사는 것이 힘들 때이다.
실명(失明)과 가난을 극복하고 한국 최초 맹인 박사가 된 강영우씨는 "고난은 보는 관점에 따라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긍정적인 관점에서 고통에 대처하는 노하우를 터득했다. 고통 때문에 하나님을 만났고, 고통 때문에 기적을 경험했다. 꿈의 사람 요셉은 영향력 있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13년 동안 고통받았다. 형들의 질투와 시기로 노예 상인에게 팔렸다. 노예 생활에서도 오해를 받아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을 "하나님이 내가 수고한 땅에서 형통하게 하셨다"라고 해석했다.
인간의 삶은 가치 지향적일 수밖에 없다. 살아가야 할 이유가 분명하면, 목표가 뚜렷하면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다. 인생의 위기에 필요한 것은 인생을 보는 시각이다. 역경(逆境)과 순경(順境)의 의미를 생각하고 해석하는 능력이다. 하나님을 향해 닫힌 마음을 여는 열쇠이다. 헬렌 켈러는 "닫힌 문을 너무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등뒤에 열린 문을 보지 못한다"고 했다. 뜻하지 않는 역경에 부딪힌 자여! 우리가 당하는 고통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 무의미한 고통은 없다. 우리를 더 큰그릇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그릇으로 만드는 섭리가 있다. 인생의 절망은 새로운 기회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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