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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세철 논설실장>
팔레스타인 지방은 구약에는 가나안으로 기록돼 있다. 이 땅의 원주민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다. 블레셋 족속을 포함한 가나안 7족속이었다.
구약성서에서 보면 이 블레셋 사람(Philistine)은 이스라엘 민족의 원수중 원수였다. 지금의 그리스와 터키 사이의 에게해에서 밀려온 해양민족이 블레셋 족속이다.
구약의 사사시대 이 블레셋 족속은 이스라엘 민족 보다 훨씬 높은 문화단게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스라엘인은 청동기단계의 문화였는데 블레셋 사람들은 이미 철기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 민족은 철기를 다룰줄 아는 블레셋 족속에게 줄곧 밀린다. 사사기의 기사들이 바로 그 내용이다. 기원전 12세기께 상황은 변한다. 다윗에서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이스라엘 통일왕조가 세워지면서 숙적 블레셋은 결국 굴복케 된다.
이스라엘 왕조는 이후 곧 분열상황을 맞고 이어 기원전 6세기 경에는 외세에 망한다. 서기 135년 유대인들은 로마의 통치에 두 번째 반란을 일으켰다가 예루살렘은 초토화 되고 유대인의 기나긴 유랑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 두 번째 반란 이후 ‘유대’라는 지명은 사라진다. 당시 로마 황제 하드리안은 유대인들에 대한 보복으로 유대인들을 힘들게 했던 블레셋 사람의 이름을 따서 ‘블레셋 사람들의 땅’ 즉 파레스티나로 지명을 바꾼다.
유대인들에게 정치적 상처를 입히자는 의도다. 이후 이 땅은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서기 637년 아랍인들이 이 땅을 점령한 후 1400여년간 아랍계 팔레스타인인의 터전이 돼 왔다. 오늘날의 팔레스타인인들은 그러나 구약시대 블레셋 사람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들은 역사속으로 사라진지 오래다.
이 망각의 땅에서 다시 갈등과 대립이 일기 시작한 건 19세기말부터다. 유대인의 고토를 회복하자는 시오니즘 운동이 시작된 이후다.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이 선포되자 중동지역은 전화가 그칠 날이 없게된다. 또 4차례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얻지 못하자 팔레스타인인들은 ‘인티파다’(무장봉기)를 선언, 이후 유혈의 폭력사태는 끊이지않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의 갈등은 그러므로 성서시대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근대 민족주의의 대두가 빚어낸 민족간 대립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유혈의 악순환은 도대체 언제나 그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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