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동안 한국에서 같은 직장에서 일했던 친구가 뉴욕을 방문했다. 제 6차 유엔여성지위위원회에 한국 측 수석대표로 참석한 한명숙 여성부장관 일행과 함께 취재 차 온 것이다.
함께 온 국회의원, 검사, 공무원 등은 모두 여성으로 거의 다 아이들을 둘 셋 씩 두고 미국에 출장 온 터라 귀국 가방에는 아이들 선물이 담겨있다.
그런데 돌아가려고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 도착한 순간, “그러고 보니 남편 선물은 하나도 안 샀네.”하는 모 공보관의 말에 이어 친구도 “나는 반창고 하나 있다.”고 하여 다들 통쾌하게 웃었다.
이 자료 찾아내라, 저 자료 찾아달라고 어찌나 일 욕심을 내는 지 “일하러 오려면 뉴욕 오지마, 순수하게 놀러와.”하고 구박을 했지만 내심, 이스트 리버가 내려다보이는 호텔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모습이 보기 괜찮았었다.
한국에서 일을 할 때 전문직 여성들 모임에 가끔 나간 적이 있었다.
롯데 일번가의 우아한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서 나눈 대화는 여성의 지위 향상도 아니었고 권익 신장도 아니었다.
“내 아이를 봐 준다는 것, 그것만으로 파출부 아줌마는 대통령이야. 진짜 대통령은 하나도 안 무서운데 그 아줌마가 하루만 쉬겠다고 해도 혹시 기분 상한 일이 있었나 해서 눈치 보느라 쩔쩔매지.” 하고 그때 국회 안에서도 잘 나가던 의원이 말했었다.
“남편도 그래. 자기는 매일 저녁 약속 있다, 야근이다 하고 늦게 들어오면서 나는 왜 야근이나 회식이면 주눅 들어서 말하게 하는지 모르겠어. 밤늦게까지 일하는데 빨리 자라고 재촉할 때는 정말 도움이 안돼.”
악바리 여기자로 통하는 동료도 말했다.
하긴 직장생활을 한 지 얼마 못가 그만 두는 여기자들의 퇴직 이유가 대부분 약혼자나 남자친구의 만류 때문이었다. 야근이다, 철야다, 십여 일을 근무하고 나면 데이트도 귀찮아져 집에 가서 실컷 잠이나 자는 것이 소원이었으니 있던 애인도 떨어져 나가는 것이 보통이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는 더욱 가슴 탈 일이 많아졌다.
베비 시터가 갑자기 오늘 못 오겠다고 전화 오면 그때부터 아기와 기저귀 보따리를 안고 이리 저리 뛰어야 한다. 철모르는 아기는 낯선 얼굴을 보고 또 보면서 하루종일 울다가 급기야 열이 치솟아 응급실로 뛰어가기도 한다.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가정이냐, 일이냐의 기로에 선 여성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미국이라고 해서 더 나을 것도 없다. 오히려 바깥일은 남자와 똑같이 다하면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할 일은 흘러 넘친다. 뉴욕의 한인 여성들은 얼마나 질기고 강한 지 보통 아기를 낳기 일주일 전, 심하면 하루 전까지 억척스레 일을 한다.
한국에서 일하는 여성은 파출부나 가정부 구하기라도 쉽지, 뉴욕에서는 베비 시터 구하기도 힘들고 비용도 엄청나 좀 큰 아이에게 동생을 맡기고 일 나갔다 오면 두 아이가 눈물 콧물이 범벅된 채 엎어져 자고있는 것을 본 적도 많았을 것이다. 그때부터 늦은 저녁을 챙겨 먹이며 자녀를 키운 이민 1세들 이야기는 주위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다.
남편은 주말마다 새벽부터 밤까지 골프를 치러가도 엄마들은 “내 아이, 고아 만들 수 없어”싶어 아이가 클 때까지 골프를 칠 수도 없다.
정작 남편은 제 볼 일을 보러가도 엄마의 마음은 아이가 본능이라 취미생활이나 자기가 하고싶은 것은 뒷전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어쩌다 남편이 “왜 이리 늦어”하고 한 마디라도 해 보라. 머리에서 김이 날 정도로 혈압이 오를 것이다. 일하는 여성 대부분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는 말이 있다.
“외조까지 감히 바라지도 않아. 집안 일 다하고 아이 챙기면서 내 일도 기를 쓰고 잘하려고 하니까 제발 방해만 하지 말라는 거지. 가만히 내버려두라, 원하는 것은 그것 뿐이야.”
정말이지, 유엔에 온 한국의 전문직 여성들도 그 자리에 서기까지 힘들었겠지만 뉴욕에서 장사하며 혹은 전문직에 종사하며 자기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는 여성들이 더욱 용해 보인다. < 민병임편집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