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옥씨의 삶은 자신에게 철저했던 삶이었다.
1936년 11월 25일 함경북도 청진에서 출생해 65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았던 김씨는 1970년대 초반에 간호협회장을 역임, 당시 한인 간호사들이 일리노이주 정식 간호사이 될 수 있도록 클래스를 운영하였으며 1989년에는 한국에서 열린 간호사 협회 총회에 미주 한인대표로 참석는등 한인 사회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김씨의 남편인 김창범씨는 고인이 된 아내에 대해 “고인은 스웨디쉬 병원에서 36년 간 일해오면서 하루도 결근을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철저한 아내였다. 아내의 이해심이 없었으면 내가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라며 “살아 생전에 가정적인 남편이 못된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고인은 6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기 전인 2001년에는 남편이 회장으로 있는 한인사회발전협의회 연말 파티에 마지막으로 참석, 장한 어머니상 수상자들을 위해 금일봉을 전달하기도 했다. 고인은 또한 암진단을 받은 후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도 “65세면 살만큼 살았다”며 의연하게 말해 가족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이형준기자 jun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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