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개인 후 햇빛이 그 반대 쪽의 하늘을 향하여 무지개를 쏘아 올리면, 그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물감을 드리운양 그 기분이 잔잔하게 채색 되어감을 느낀다.
무지개는 하늘에 문득 떠올라 머물다가 한 순간에 사라지기도 하지만, 깊은 산 속의 계곡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따라서 나타나기도 하고 물보라 치는 폭포 근처에서 맴돌기도 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많은 이야기로 만들어진 후, 우리들의 사랑과 꿈을 키워주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내용은 ‘노아 시대의 대 홍수’가 끝난 다음에 나타난 무지개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다시는 홍수로 이 세상을 멸망시키는 일이 없을 것을 약속하는 징표로서 무지개를 구름 속에 나타나게 하였다는 것인데, 모든 생물과의 이 ‘영원한 약속’은 하나님이 스스로 맺은 언약이기도 하였다.
그러면 어째서 무지개인가. 무지개는 물기와 햇빛이 있을 때에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으로서 반드시 해의 반대 방향에서 보아야만 하기 때문에 무지개가 떠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보는 사람도 있고 못 보는 사람도 있게 된다.
또한 무지개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으나 만질 수는 없다. 그러나 환각이나 착시 현상이 아니어서 여러 사람들에게 동시에 보여지는 확실한 현상이기도 하다. 보이기는 하지만 물체는 아니며 아무도 소유할 수도 없다는 사실은 마치 추상적인 개념인 ‘사랑’, ‘희망’, ‘소망’같은 단어들이 갖고 있는 성질과 매우 흡사하다. 그 단어들은 우리가 감각을 가지고 느낄 수는 있으나 물질이 아니므로 만질 수는 없다.
우리는 때때로 무지개를 만들기도 하는데, 물질도 아니면서 물질 명사에 속하고, 개념도 아니면서 추상 명사의 본질을 갖고 있는 무지개는 자연 현상인 비, 바람, 눈, 안개처럼 인간에게 이익과 재앙을 번갈아 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즐거움만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하나님이 준 언약’이기도 한 무지개를 우리가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마도 무지개는 그냥 ‘아름답다’는 감각적인 감동만을 우리에게 주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모든 생물과 한 약속의 징표라면 보다 뜻깊은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비가 그친 후, 밝은 햇빛을 받아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를 바라보며 비탄에 빠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사랑’과 ‘소망’의 개념을 가지고 물질과 정신의 사이를 이어주는 구름다리이며,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희망의 빛깔로서, 이 세상의 지친 인생들이 언젠가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갈, ‘구원’의 사다리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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