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 박봉현 편집위원
조선시대 공주들은 혼례를 치를 때 각양각색의 보석으로 치장한 진주선이란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서민들의 경우 고급스런 부채는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얼굴을 감추려고 부채를 사용했다. 신랑은 청색을 바른 청선을, 신부는 홍색을 바른 홍선을 들고 식장에 나왔다.
남에게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줍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에겐 얼굴가리개가 제격이다. 얼마전 탐 크루즈와 니콜 기드먼 부부가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영화 ‘눈을 크게 감고(Eyes Wide Shut)’에 나오는 한 사교클럽에서는 회원 남녀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가면을 쓰고 본능대로 행동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얼굴 가리기는 수줍음을 달래주는 익명성 보장에 한술 더 떠 신비감마저 자아낸다. 성스러움을 나타내는 신성가면, 악귀를 쫓는 벽사가면, 병을 낫게 하는 의술가면, 영혼을 치유하는 영혼가면, 동물로 분장하는 토템가면, 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추억가면, 비를 기원하는 기우가면 등을 쓰고 하는 탈놀음이 있다. 자연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가면이란 상징물을 이용해 인간과 신을 연결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언행을 조신하게 하고 고인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일정기간 ‘얼굴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따르면 부여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5개월동안 초상을 지내며 이 기간동안 미망인은 순백색의 옷을 입고 베로 만든 얼굴가리개를 쓰고 다녔다고 한다. 탈레반 정권하의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당시 사회규범상 머리에서 발끝까지 내려오는 부르카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대통령 영부인 이휘호 여사가 중추신경 계통 수술을 받기 위해 먼저 들어온 장남 김홍일 민주당의원을 위로차 LA에 도착하자 경호원들은 취재진에 노출되지 않도록 호텔입구와 주차장 입구를 이틀째 높이 2.5미터 폭 10미터의 검정 천막으로 가렸다.
사적인 방문이긴 하지만 ‘해리 포터’에 나오는 마술쇼도 아니고, 뒤가 켕기는 부끄러운 일도 아니며, 영부인 경호에 관한 전통도 아닌데 천막으로 얼굴을 가리려는 것은 왠지 매끄럽지 못했다는 인상이다. 미국측 경호팀이 주관한 것이라 해도 청와대측이 "철저보안"을 주문해 해프닝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공항에 내려 저간의 사정을 전하고 이해를 구했더라면 조용히 지나갈 일이었다. 하등 가릴 필요 없는 얼굴을 가리려 하다가 괜스레 이러쿵저러쿵 잡음만 생겼다. 공인도 사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렇다고 ‘긁어 부스럼’을 만들 것까지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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