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모친과 케아우 김치공장, 무일푼서 자수성가 입지적 인물
하와이의 이웃섬인 빅아일랜의 최고행정책임자 해리 김 시장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초기 이민자의 9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나 어린시절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 시장의 과거를 더듬다 보면 흥미로운 대목과 마주치게 된다. 15세 때 부친이 타계한 뒤 돗자리를 짜서 생계의 한 축을 거들었던 김 시장이 90년대 초반까지 빅아일랜드 카운티의 청사가 소재한 힐로에서 김치공장을 운영했다는 소문이 바로 그것이다.
해리 김 시장에게 직접 확인해본 결과 소문은 사실이었다.
김치공장은 이미 오래전에 고인이 된 그의 어머니 김야물 여사가 1954년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한 방편으로 일으킨 가업"이라고 했다. 먹고 살길은 막막한데 달리 돈버는 재주를 갖추지 못한 모자가 주변사람들의 권유에 따라 시작한게 김치사업이었다.
머릿속에 사업의 개념조차 없는 열 네 살짜리 아들과 영어를 전혀 해득하지 못하는 어머니가 한 조를 이뤄 이끌어가는 사업이 쉬웠을리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김치사업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남해 출신인 어머니가 특유의 근면성과 끈기를 기막힌 손맛으로 버무려 빚어낸 맛깔스런 성공이었다.
이후 케아우 김치(Keaauu Kim Chee)는 판로를 넓혀가며 승승장구, 하와이의 ‘유명상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작고하신 후 문제가 생겼다. 가족중 케아우 김치를 이끌어갈만한 사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그가 회사운영을 맡았으나 시간이 너무도 빠듯했다. 빅아일랜드의 민방위대장이었던 그로서는 개인사업과 공무를 양립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만드는 일을 나 몰라라하고 종업원들에게 일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꼬장꼬장한 성격은 그 같은 무책임을 그대로 보아넘기지 못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결국 사업체를 매각했다.
그러나 공장을 넘기면서도 상표는 팔지 않았다. 케아우 김치라는 상표가 가족의 소유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앞으로 김치장사를 다시 하게 될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케아우라는 이름은 영원히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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