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 32돌 대하시리즈 5 - 하와이편
▶ 곳곳에 애국충정 흔적, 동지애 지금도 장학사업
하와이에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숭배자들이 아직도 많다. 이들은 이 박사가 1921년에 설립했던 동지회는 지난 74년에 재건해 지금까지 장학사업을 펼치고 있다. 60여명의 회원을 거느린 동지회 회장을 맡고 있는 서세모 내과전문의는 이 박사가 하야후 타이프라이터 한 대만 달랑 들고 하와이로 건너왔다고 소개하고 "그렇게 검소하고 애국심이 넘치는 분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이 박사를 뛰어넘을 만큼 변변한 후임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평도 들린다.
이 박사는 하와이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꽤 널리 알려진 인사다. 오아후의 외곽 솔트레익에 위치한 사설골프장 ‘호놀룰루 컨트리클럽’의 클럽하우스 벽에는 이곳을 방문한 국내외 유명인사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이 박사도 끼어 있다. 이 박사에게 헌정된 이 클럽의 15번 홀은 지금도 ‘승만 리 홀’로 불리고 있다.
하와이에서 이 박사의 흔적을 찾아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문헌에 따르면 이 박사가 하와이를 미주독립운동의 근거지로 택한 연도는 1913년이었다. 본토에서 활동하다 호놀룰루로 이주해온 그는 1913년 ‘태평양잡지’를 창간하고 1918년 한인기독학원과 한인기독교회를 창립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의 임시 대통령으로 선임돼 중국으로 건너갔으나 21년 다시 하와이로 돌아와 동지회를 설립하고, 독립운동자금조달과 동지촌 건설을 위해 이웃섬인 빅아일랜드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이 박사는 1929년까지 벌목과 토지개간, 숯구이, 채소농사 등 자금확보에 초점을 맞춘 ‘수익사업’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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