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사탕수수밭의 조상들
▶ 101세 유분조 할머니 가족
올해 73세인 앨리스 유 김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면서도 ‘늙은 티’를 내지 못한다.
손자까지 둔 ‘확실한 할머니’지만 올해 8월29일로 101번째 생일을 맞는 노모를 챙기느라 자신의 나이는 아예 잊고 산다.
고희를 넘긴 앨리스가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엄니’는 지구상의 ‘마지막 한인 사진신부’로 알려진 유분조 할머니다.
’엄니’는 지난 1월 "풍"을 맞은 뒤 부쩍 기력이 떨어졌다. 시간에 그토록 강한 내성을 보이던 ‘엄니’가 100세를 넘기면서부터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세월의 무게를 버거워 하기 시작했다. 100년 동안 고운티를 유지했던 노모의 얼굴은 묵은 적금이라도 탄 듯, 지난 1년 새 한꺼번에 제 나이를 되찾았다.
23세 연상인 영감 "유도번이 세상을 뜨고 아이들이 결혼해 가정을 꾸린 뒤" 칼라카우아 노인 아파트에서 30년간 혼자 살아온 유분조 할머니는 작년 11월부터 ‘독립 생활’의 일부를 포기했다. 그동안 한사코 마다해온 외동딸 앨리스의 ‘참견’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
그때부터 부지런히 ‘엄니’ 집을 드나들며 부엌을 완전 장악한 앨리스는 지난 1월 드디어 침실까지 밀고 들어왔다.
유 할머니가 풍을 맞은 후 앨리스는 막내동생 링컨(70)과 하루씩 번갈아 가며 노모 곁에서 밤을 지내고 있다. 유 할머니도 이제는 "일없다"며 손사래를 치지 않는다.
세인트 프란시스를 비롯, 하와이의 주요 병원을 돌며 근 반세기동안 간호사로 활동하다 3년전 은퇴한 앨리스는 요즘 "생각이 복잡하다"고 털어놓았다.
본토에 거주하는 큰 오빠 피터(80)의 건강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피터는 얼마전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앨리스는 "행여 오빠가 엄니보다 먼저 세상을 뜰까, 그게 걱정"이다. 40년 전 잃어버린 둘째 아들 생각에 아직도 가끔씩 눈물을 비치는 엄니다. 기력이 급격히 쇠잔해진 노모에게 자칫 치명적인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큰 오빠는 "절대 엄니를 앞서서는 안된다."
피터, 헨리(62년에 39세로 사망), 하워드(75) 등 위로 세명의 오빠와 남동생 링컨을 둔 앨리스는 미주리주의 세인트 루이스대학을 졸업한 후 1949년부터 50년간 간호사로 근무했다. 대학졸업후 피터와 하워드는 꿈을 쫓아 본토로 떠났지만 앨리스와 링컨은 82년째 하와이를 지키고 있는 어머니곁에 머물렀다.
앨리스는 "엄니가 기력은 떨어졌지만 정신은 나보다 훨씬 좋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101세를 향해 나아가는 유 할머니의 기억력은 놀라울 지경이었다. 할머니는 17명의 손자와 증손자 20명의 이름은 물론 나이까지 정확히 꿰고 있었다.
인터뷰도중 구체적인 연도를 묻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앨리스는 다급하게 "엄니"를 불러댔고, 엄니는 순간적인 망설임조차 없이 정확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마우이에서 힐로로 이주한 해가 언제쯤이냐는 질문에 앨리스의 말문이 막히자 ‘엄니’는 1936년이라고 훈수를 두었고, 가장 큰 증손자의 나이를 묻자 21세라는 정답을 내놓았다.
엄니의 정신은 이처럼 말짱하지만 101세 노인의 시중을 들기가 그리 쉬울 리 없다. 뇌졸중을 일으킨 뒤 보행기에 의지하지 않고는 거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전보다 힘이 갑절도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앨리스와 링컨은 전혀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엄니는 정말 고생 많이 했어. 아버지가 막내를 낳은 후 병들었기 때문에 엄니 혼자서 우리를 키웠어. 신혼 때부터 일당 1달러25센트를 받고 매일 수십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의 옷을 빨아대느라 손의 허물이 모두 벗겨졌어. 삯바느질도 했고 호눌룰루의 분조 그로서리라는 식품점도 운영했어. 그러면서도 엄니는 우리 5남매를 모두 대학에 보냈어."
아직도 노모한테 "한국말 잘못한다고 야단맞는다"는 앨리스는 "살아서 고생 많이 한 엄니가 갈 때나마 편안하게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호원에 가지 않고 편하게 가고 싶다"던 유 할머니의 2년전 소원을 들려주자 앨리스는 고개를 끄떡였다. "맞아. 엄니는 아흔을 넘기면서 늘 그 말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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