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은퇴한 후에는 커뮤니티 자원봉사자로 폭넓은 친구들 사이에 위트와 포옹으로 인기 있던 두 아들의 아버지 마티 겔트먼(65)의 삶을 축하해주는 자리에는 100여명이 모였다.
겔트먼의 두 번째 아내 젤라(62)가 마이크를 돌린 2시간동안 20여명의 참석자들은 그녀의 남편이 얼마나 사랑받는 아버지요 교사였는지, 얼마나 위트있고 사교적이고 헌신적이고 정열적인 자원봉사자였는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겔트먼이 정신병 환자를 도와 역할놀이를 하고 노인들이 계속 활동적으로 살도록 돕고 뉴왁 아카데미에 문맹퇴치 프로그램을 설립한 것도 언급됐다.
장남 스티브는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이번 주에는 무슨 좋은 일을 하실지를 아내와 같이 기대하며 살아왔습니다. 여기 참석한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의 단 하나의 소망은 함께 보낼 시간을 조금 더 갖고 싶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
‘헬로 달리’의 멜로디에 맞춰서 ‘헬로 마티’를 불르기도 하고, 겔트먼이 머리가 빠지기 시작해 가름마를 바꿔 탄 것을 기억해내기도 한 사람들은 모두 가벼운 여름 옷차림들이었다. 기타를 치기도 하고 손뼉을 치기도 했으며 포옹과 키스가 넘쳐 흐르는 가운데 자신의 삶을 말로, 노래로 기념하는 자리에는 겔트먼도 있었다. 계속되는 암과의 투쟁에 지칠만큼 지쳤지만 턱시도를 입고 휠체어에 앉아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지켜봤다. 악성 뇌종양으로 수술도 소용없어 이제 죽음을 몇달 앞두고 있는 겔트먼은 평소와 다름없는 품위와 유모어를 가지고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한 것이다.
이 모임은 남편이 죽은 다음, 추도식을 혼자 치를 자신이 없었던 아내 젤라(62)가 제안했다. “장례식에 가보면 고인에 대한 좋은 말들이 많이 나와 그 사람이 그 자리에서 들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깝곤 했어요”
교회당에서 치르긴 했지만 종교의식도, 장례식도 아닌, 이 살아서 치르는 추도식이 과연 일반화될지는 알 수 없지만 대중들의 의식 속에는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몇 년전 미치 앨봄이 쓴 베스트셀러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도 바로 그런 기록이었다. 겔트먼 내외도 지난 1993년에 같은 교회 신자로 암환자였던 수전 슈나이더의 추모식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당시 40대였던 슈나이더는 그 추모식 6일후에 세상을 떴다.
미국심리학회의 임종문제위원회 위원장인 심리학자 주디스 스틸리온 박사는 살아서 치르는 장례식은 은퇴하는 사람을 보내는 파티와 비슷하게 들린다고 말한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잘만 되면 참석한 많은 사람들에게 종결의 느낌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전국장의디렉터협회 회장 존 카먼은 죽음이란 남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고 말한다. ‘당사자에게는 좋은 일일 수 있습니다. 남은 몇 주, 몇 달동안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참석자들이 차례로 겔트먼과 한두마디를 나누는 시간을 마친후 겔트먼은 추모식이 자기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고 말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따끔하게 야단을 맞을 줄 알았었는데 반대가 됐어요. 내가 정말 원한 것은 어떻게 죽는 것인지를 가르치는 것이었지요. 그것은 종교와 상관이 없어요. 나는 정말 괜찮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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