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인아버지’ 하면 왠지 측은한 생각이 든다. 미국에 이민 온 한인아버지들은 자식과 가정을 위해 죽어라 일하고도 가족들로부터 제대로 대우를 못 받고 있다. 이 곳의 한인아버지들은 경제력이 있고 여권이 신장된 미국에서 살아가는 아내들과 영어권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 틈에서 대접은 고사하고 외톨이 신세로 살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민온지 20년 된 한 한인 아버지는 이민 온 것이 크게 후회된다고 신세를 한탄한다. “죽어라 일하고 저녁에 집에 가도 아내에게서 한국에서처럼 제대로 밥상도 못 받고 직장에서 늦게 돌아오는 아내덕분에 밥도 혼자 찾아 먹어야 하고 자식들로부터도 소외당하고 있어요. 어릴 땐 몰랐는데 어느새 아이들이 커지면서 아버지를 제껴놓고 저희들끼리 무언가 영어로 말을 하며 킥킥댈 때는 자기 흉을 보는지, 욕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괜시리 화가 납니다.” 자식 때문에 이민을 왔는데 결과는 자식 따로, 아버지 따로, 어머니 따로 마음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라며 그는 “애꿎은 술로 울적함을 달래곤 한다”고 푸념한다.
한국의 아버지 상은 할 말을 다 못하고 사랑도 제대로 표현 못한 상태에서 공연히 엄하기만 하여 아이들도 아버지의 깊은 속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성장 후 어느 정도 아버지를 이해하고 알 때쯤이면 아버지는 이미 머리가 히끗히끗 늙어버린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가정에서 아버지 말이라면 아직까지는 통하는 시대인데 반해 미국에서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아버지들은 이래저래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한인가정의 아버지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살아왔는지 모르겠다며 허탈해 한다.
우리말에 ‘과부가 3년이면 쌀이 서말이요, 홀아비 3년이면 이가 서말’이라는 말이 있듯이 남자는 늙으면 살기가 더 힘들어지는 반면,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 기가 살아나면서 살아가는데 크게 문제가 없다. 한국의 아버지는 늙으면 늙을수록 기운이 쇠하면서 의욕이 상실되고 가정에서 그 존재가치가 점점 미약해진다. 젊을 때 마누라 신경 안 쓰고 아무렇게나 살다가도 나이가 들게 되면 구박을 받을까봐 아내의 눈치를 은연중에 보고 사는 것이 한국의 보편적인 아버지 상이다. 한국에서는 요즈음 아버지들이 어머니로부터 늦으막에 이혼 당하는 황혼이혼이 보이지 않게 늘고 있다고 한다.
예전 한국의 아버지들 권위는 상승할 대로 상승, 어머니들이 아버지 밑에서 힘든 생을 보내왔기 때문에 일년에 단 하루만이라도 그들의 희생을 생각하고 위로해준다는 의미로 어머니날이 있는데 반해 미국에서는 어머니날 대신 오히려 아내에 눌려 힘든 상황에서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노고를 생각해 아버지날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이곳에도 한인아버지들 가운데는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전혀 도움이 안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하루종일 돈 버느라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일하다가 집에 와서 까지 일을 해야 하는 아내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대접을 안 한다고 주먹질을 하거나, 벌어온 돈을 빼앗아가 술이나 도박으로 없애지 않으면, 노동이나 신체에도 해로운 재료를 다루면서 손님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번 돈을 얌체(?)처럼 가져다가 골프장에 가서 신선놀음이나 하고 돌아와서는 오히려 트집을 잡아가며 아내를 괴롭히는 아버지들도 있긴 있다.
한국은 가부장제도 하에서 살아가는 아버지의 날은 어쩌면 일년 365일 내내 있는 것같이 아버지들에 대한 대우는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언제든지 아버지 밥상은 반찬이 최고였고 아버지는 멍석에 곡식이 다 젖어도 그걸 치우지 않을 정도로 집안의 왕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한인 아버지는 그 존재가치가 달라지고 있다.
무엇을 하던 거의 아내와 자식들이 우선이고 오히려 아버지들은 뒷전에 밀리는 처지가 돼버렸다. 그래선지 이민가정을 일구느라 애쓴 한인아버지들의 양어깨는 유난히 쳐져 보인다. 허지만 고생고생해서 생긴 흰 머리칼은 처연하기보다는 6월의 땡볕아래 유난히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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