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가톨릭 및 주요 개신교단 본산 불구, 도덕규범, 이성과 휴머니즘이 종교 대체
9백년이 넘도록 유럽 각지에서 온 순례객들이 줄을 잇던 곳이지만 요즘 캔터베리 대성당은 한가하기 그지없다. 일요일 아침 기도에 나온 사람은 달랑 13명, 낮의 대미사 출석자는 하얀 가운을 입은 성가대 소년들과 비디오 카메라를 든 관광객들까지 합해봐야 300명 정도. 그래도 좌석의 80%는 비어 있다.
전 세계 영국 국교회 및 성공회의 어머니 교회인 캔터베리대성당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요즘 서유럽의 교회들은 대부분 일요일에 텅텅 빈다. 로마 가톨릭 교회와 주요 개신교단들의 본산지 서유럽 사람들이 종교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 한 달에 한번이라도 교회에 가는 사람은 전 인구의 10%도 안된다. 스칸디나비아의 경우 도시와 마을마다 멋진 뾰족지붕 교회들이 자리잡고 있어도 국민의 3%만이 출석할 뿐이다.
반면 유럽에서는 저물어 가고 있는 기독교가 과거 유럽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는 융성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경우 1988년에 1억600만명으로 추정되던 로마가톨릭교 신자는 10년후에는 1억1700만명으로 늘었으며 남미에서는 1988년에 3억7800만명이 1999년에는 4억5400만명이 됐다.
또 유럽에서도 기독교 교회당은 비어가지만 다른 종교 신자는 늘고 있다. 이민자들이 유럽으로 가져온 힌두교와 회교도 숫자가 급격히 늘어 올해 실시된 영국 센서스에는 이제까지 없던 문항인 ‘소속 종교’ 표시가 생겼다. 아울러 유대교도 숫자도 늘고 있지만 유럽 전체에서 비기독교도의 숫자는 물론 아주 소수다.
유럽 사람들의 신심 상실은 미국인들의 그것과 양상이 다르다. 물어보기에 따라 답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미국인들은 95%가 하느님을 믿는다고 대답하지만 서유럽 사람 중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들은 50% 정도다. 종교가 대중의 생활 속에 자리잡고 있는 미국과는 달리 유럽 TV의 선교방송들은 모두 미국에서 제작된 것들이다. 유럽 사람들은 미국 정치인들이 “미국에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이라고 연설을 끝맺는 것을 보고 놀란다. 영국 수상이 “영국에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이라고 말하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유럽이 아직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많은 미국보다 덜 도덕적이고 인정도 없는 사회라고 말할 수는 없다. 미국 사람들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쓰인 커다란 빌보드를 잘도 보고 다니지만 유럽 사람들이 충격받을 정도로 많은 살인과 강간을 이웃에 저지른다. 공무원과 사업가들의 부패는 양쪽 다 비슷한 정도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교회에 잘 가지 않지만 그 정부의 가난한 나라에 대한 원조액은 국민 1인당 소득으로 따져볼 때 미국 정부의 10배에 해당한다. 사실 서유럽 각국 정부는 미국보다 훨씬 많은 비율의 예산을 해외원조로 사용한다.
일부 유럽인들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공식 종교인구 감소는 결국 공중도덕의 기반을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전통의 힘으로 버티고 있지만 그것도 언젠가 끝나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유럽 사람들이 도덕적 행동규범으로 삼고 있는 것은 종교의 계율이 아니라 이성과 휴머니즘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덴마크의 사회학자 요르겐 굴 앤더슨은 “도덕성은 아직도 대체로 기독교의 규범에 기반을 두고 있으나 오늘날 덴마크에서 규범은 규범이니 지켜야만 한다고 말해서는 안 통한다. 규범은 합리적이기 때문에 규범이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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