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걸었습니다. 어려울때마다 두고온 아들을 생각했습니다"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의 첫 날을 맞은 김순희씨는 모든 것이 신기한 듯 연신 주위를 돌아보며 때로는 환하게,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온갖 어려움속에 미국을 찾아 온 지난 7년을 더듬었다. 남편과 북한이 싫어 자유를 찾아 2살인 아들과 함께 무작정 압록강을 건너고 중국 연변에 숨어 지내며 항상 생각한 것은 모든 것이 풍족한 미국으로 들어가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홍콩과 필리핀, 멕시코를 돌아 우여곡절 끝에 미국접경 지역인 티화나에 도착, 마침내 소망을 이루는가 싶었건만 운명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한달간의 구치소생활 끝에 김씨는 또다시 망명신청이 받아들여지길 기다리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게 됐다.
함경북도 철산태생으로 천진대 사범학교를 거쳐 무산에서 소학교(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김순희씨(37)는 중학교 교사인 남편과 여러 가지 이유로 맞지 않아 자주 부부싸움을 해 항상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자신의 한달 봉급은 북한화폐로 900원 정도. 남편도 어느정도 벌었지만 항상 부족했고 어릴적부터 욕심이 많아 불만도 많았다. 여기에 지난 92년의 대 홍수로 북한 전역이 식량난을 겪었고 정기적으로 주던 급식도 제대로 급식을 받지 못했다. 그나마 강냉이라도 세끼를 떼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것마저 여의치 않았다. 돈이 있어도 시장에 가서 살 물건이 없어 무용지물이었다.
"이대로 살 수없다. 일단 연변으로 가자"고 결심했다. 탈출은 결심한지 3일만에 이루어졌다.
94년 2월말. 압록강은 아직도 얼음으로 덮여있었다. 이곳저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었던 터라 어느정도 탈북경로는 알고 있었다. 아들을 데리고 야밤에 경비원들의 감시를 피해 죽을 각오를 하고 강을 건넜다. 이때 함께 월경을 시도하던 다른 북한인중 두명이 경비원들에게 발각돼 총탄을 맞고 목숨을 잃었다. (누구냐고 묻자 대답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러나 평소에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사전준비도 없이 무작정 국경을 넘은데다 연고자가 전혀 없는 연변에 도착해 보니 모든 것이 망막하기만 했고 중국의 공안(경찰)요원들과 조선족 사회에서 암약하는 북한요원들이 두렵기만 했다. 탈북자중 다시 붙잡혀 돌아온 사람들의 끔찍했던 모습들이 눈에 선했기 대문이었다.
다행히 현지에서 만난 조선족들은 김씨 모자를 친절히 대해줬고 바느질 일거리를 갖다 주는 등 그런대로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도움을 준 사람을 물으니 몇사람 이름을 댔지만 곧바로 취소한다고 했다). 그러나 바느질 만으로는 모자가 먹고 살기에 충분한 돈을 벌지 못했고 돈을 더 벌기 위해 생선을 팔기도 했다. 물론 북한에서보다는 훨씬 나은 생활이었지만...
6년여간을 연변에서 보내는 동안 김씨는 주위로부터 미국에 들어가는 방법 등을 전해듣기 시작했고 위조여권을 어떻게 구입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됐다.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속으로 "반드시 미국에 들어가리라" 하는 각오를 되새겼고 빠듯한 생활비 일부를 경비로 사용하기 위해 따로 모으기 시작했다.
마침내 작년 10월초 한국에서 온 한 남성으로부터 대한민국 여권을 2,000달러에 구입한 뒤 10월말 홍콩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심수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떠나기전 아들에게 "2002년에 돌아오마. 공부 잘하고 건강해라"라며 다독거렸지만 어린 피붙이를 외지에 홀로 남겨놓고 떠나야 하는 어미의 가슴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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